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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8]포클레인 발톱 피한 '수로부인'의 고운 자태 (조선일보)

colorprom 2017. 8. 30. 14:05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8]

포클레인 발톱 피한 '수로부인'의 고운 자태

  •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입력 : 2017.08.30 03:10

황성동석실분 출토 토제 여인상. 높이 16.1㎝.
황성동석실분 출토 토제 여인상. 높이 16.1. /국립경주박물관



1987년 5월 19일. 경주 황성동에서 신라 석실분 발굴이 시작됐다.
조사단장인 이강승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실장, 발굴 책임을 진 동국대 이희준 교수는
분노를 억누르며 조사에 임했다.
이들이 분노한 것은 옛 무덤임을 알면서도
건설회사 측이 포클레인으로 유적을 두 번에 걸쳐 무참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무덤 전체를 8조각으로 구획하고 서남쪽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곧이어 흙더미에서 자그마한 토용(土俑)이 연이어 출토되자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 해 전 십이지와 토용 발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주 용강동고분에 버금가는
중요 유적임을 알았기에 안타까움도 더욱 커졌다.

이어 동북쪽 흙 속에서 완전해 보이는 토용 1점이 모습을 보였다.
흙을 제거하자 반듯하게 엎드린 여인상의 윤곽이 드러났다.
깨끗이 세척하니 오른쪽으로 몸을 조금 비튼 채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었다.
머리는 곱게 가르마를 타 뒤에서 묶었고 소맷자락에 파묻힌 왼손으론 부끄러운 듯 입을 살짝 가렸다.
오른손엔 술병을 들었고 긴 치마 앞으로 두 발끝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조사단은 헌화가수로부인(水路夫人)을 떠올렸고 수로부인은 이 토용의 애칭이 됐다.

이 교수는 토용의 복식으로 보아 무덤의 조성 연대를 7세기 중엽으로,
주인공을 왕에 준하는 지위의 진골 귀족으로 보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지증왕 3년(502년) 순장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 후 사후세계에서 함께 지낼 사람들을 흙으로 빚어 묻어주게 됐다 .
이 무덤 주인도 사랑스러운 '수로부인'과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유언으로 남긴 것은 아닐까?

석실분 훼손 사건을 계기로 경주 일원 유적들의 보호 필요성이 대두됐다.
1990년에는 인접한 곳에서 신라 초기의 대규모 제철단지가 발굴됐다.
이 교수는 무참히 부서진 황성동석실분의 음덕 때문에
지금까지 황성동 일대에서 중요 유적이 연이어 발굴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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