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서는 입적 순간의 ‘마지막 한마디’를 중요하게 여기죠.
그래서 제자가 귀에 대고 조용히 묻곤 합니다. “스님, 여여(如如)하십니까?”
죽음의 눈앞에서 행여 마음의 자리에 ‘집착의 파도’ ‘아쉬움의 파도’가 밀려오진 않는가를 묻는 거죠.
보이는 것의 덧없음
간결한 한마디로 전해
그럼 소위 ‘4대 성인(聖人)’으로 꼽히는 이들은 어땠을까요.
붓다와 예수,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현문우답’은 앞으로 한 편씩 이들의 최후와 유언에 담긴 ‘숨결’을 담아볼까 합니다.
먼저 붓다의 최후를 볼까요.
◆풍경1= 2500년 전이었죠. 붓다는 35세 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45년째 설법을 했죠.
그러던 어느날 붓다는 대장장이집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물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쭌다는 붓다를 찾아가 법문을 듣고 공양(식사)을 올렸습니다.
버섯이나 돼지고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은 붓다는 탈이 나고 말았죠.
출혈이 심한 설사병에 걸린 겁니다. 당시에는 식중독(추정)이 무척 큰 병이었나 봅니다.
붓다는 결국 죽음을 예감했죠.
월드컵 결승전의 승부차기에서 골을 놓친 선수는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죠.
그럼 상한 음식을 대접해 성인(聖人)을 죽게 한 사람의 양심적인 가책은 얼마나 될까요.
붓다의 위대함은 여기서도 돋보이죠. 죽음의 문턱에서도 붓다는 제자 아난에게 일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로 쭌다를 슬프게 할지 모른다.
‘당신의 공양으로 여래(부처)가 열반에 드셨소. 당신의 실수이며 불행이오!’.”
붓다는 쭌다가 겪을 슬픔과 자책을 정확히 예견했죠. 그리고 처방전까지 내렸죠.
“쭌다의 슬픔은 이렇게 없애면 된다.
‘쭌다여, 여래가 당신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드신 후 열반에 드신 것은 당신의 공덕이며 행운입니다.
쭌다여, 나는 이 말씀을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붓다는 쭌다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하도록 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죽음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붓다는 쭌다의 마음에 생겨날 매듭을 미리 풀었던 거죠.
그건 바로 ‘붓다의 자비’였습니다.
붓다에겐 ‘중생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매듭이 곧 나의 매듭’이기 때문이죠.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풍경2=인도의 쿠시나가라에서 붓다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됐습니다. 주위에는 제자들이 서 있었죠.
붓다가 말했습니다.
“그대들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그리고 붓다는 숨을 거두었죠. 당시 붓다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갈렸죠.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은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어떤 이는 팔을 휘저었고, 어떤 이는 이리저리 뒹굴며 슬픔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욕망을 벗어난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죠.
그들은 “이 무상한 것들이 어떻게 영원하기를 바라는가”라며
붓다의 죽음을 고요하게 바라볼 뿐이었죠.
붓다의 유언은 참 간결합니다. ‘모든 형상은 무너진다’와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유가 있죠. 봄은 왔다가 또 가죠. 꽃은 피었다가 또 지죠.
세상의 모든 형상은 무너지게 마련이죠.
육신도 그렇습니다. 육신의 무너짐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육신 속에 갇히지 말라고 한거죠.
그래서 붓다는 육신 속에 갇히지 말라고 한거죠.
육신에 갇히지 말고, 집착에 갇히지 말고, 욕망에 갇히지 말라는 거죠.
눈 앞에 보이는 이 세상에 갇히지 말라는 거죠.
갇힌 자는 육신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에도 마음은 그 문턱을 넘질 못합니다.
육신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마음은 이 세상을 붙잡고 말죠.
그래서 흐르질 못합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듯이 흐르질 못하죠.
그래서 흐르질 못합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듯이 흐르질 못하죠.
그래서 이 거대한 우주의 숨결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죠.
그래서 붓다는 말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유언의 순간에 딱 한 마디, 참으로 간곡하게 말했죠. “부지런히 정진하라.”
백성호 기자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