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의 무거움 2017년 2월 23일 목요일
사도행전 15:36~15:41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심히 다투어(39절): 매우 격노했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를 의학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면 ‘경련’이나 ‘발작’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다툼은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에브리원주석 참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38절): 바울은 지난 선교여행에서 엄청난 고난을 직접 경험했다.
그런 점에서 마가는 선교여행중의 고난을 감내할 수 있을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관계보다는 공적인 직분에 대해 우선순위를 두고 치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실라를 택한 후에(40절): 실라는 바울처럼 로마시민이었고, 또 예루살렘 교회에 인정받는 자였기에
이방인 선교에 유익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직분의 무거움 2017년 2월 23일 목요일
바울과 바나바는 두 번째 선교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로 심하게 다툽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바나바는 마가를, 바울은 실라를 택해 각각 따로 선교여행 떠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먼저 바울이 너그러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마가는 믿음을 떠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중간에 이탈한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겠다는 것은 뉘우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형제로써 마가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공적인 직분으로써 마가를 거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일종의 치리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공적인 직분이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비록 두 사람의 선의가 다툼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마저도 복음의 확장에 사용하셨습니다.
빈자리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2015년 7월 27일 월요일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동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다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다툼 끝에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섭니다.
이때까지 바울의 선교활동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와 함께해왔었습니다.
요한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바나바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
바울은 이들과 작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바울은 오랫동안 함께 선교활동을 해오던 바나바와 헤어지게 되어 마음이 위축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나바가 떠나간 빈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주십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져 실라와 함께 선교활동을 계속합니다.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디모데라는 새로운 동역자를 얻게 됩니다.
바울의 선교활동은 디모데를 만난 후 더욱더 탄력을 받게 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보낸 편지들 중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에는 공동 발신인으로 언급될 정도로 최고의 동역자였습니다. 주 안에서 얻은 아들이라고 칭할 정도로 그에 대한 바울의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바나바가 떠나간 빈자리에 디모데와 같은 최고의 동역자를 새로 보내주셔서,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이 지속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 모두가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갈등합시다 2016년 4월 28일 목요일
하나님은 '동역'을 기뻐하십니다.
일하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하기를 바라십니다.
동역은 하나님의 방식이자 원칙입니다.
원칙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동역의 원조는 에덴동산부터 시작되었지요.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인 '꼴'을 못 보셨습니다.
에덴동산 이후 아담에겐 하와, 모세에겐 아론, 다윗에겐 요나단이 함께했습니다.
예수님도 혼자 일하지 않으셨지요.
초대교회라고 어디 예외였겠습니까? '사도'행전은 '교회'행전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오순절에 시작된 교회가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는 물론이거니와 사마리아를 넘어,
마침내 ‘땅 끝’까지 확장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확장의 중심엔 언제나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일례로 사도 바울은 혼자 다니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와 함께하였고, 실라와 함께하였고,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와 함께하였고,
유니아 등 여인들과도 함께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동역할 때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도 바나바와 갈등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설" 만큼 심각한 갈등이었습니다.(행15:39) 전에 중도하차했던 '마가'라는 사람에 대한 견해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15:41)
견해차이와 의견충돌과 갈등은 결코 하나님의 선교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갈등은 '정상'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되나요?
우리, 함께 일합시다. 동역합시다.
그리고, 갈등합시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2016년 4월 29일 금요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그냥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행16:5)
왜 은혜가 되고 기분이 좋겠습니까?
이 말씀 앞에 이런 말들이 생략됐음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어도, 갈등이 있어도, 고난이 와도, 풍랑이 일어도, 온갖 방해가 있어도, 별별 일이 다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교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그런 말씀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본래부터 그랬습니다. 교회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들풀과 같았습니다.
교회성장과 교회부흥, 교회성숙은 고난 가운데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교회성장과 교회성숙에 관한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결정적 단서가 1절에 있습니다. "거기 디모데라하는 제자가 있으니."(행16:1)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과 교회 전체의 '변화(확장, 성장, 성숙)'를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한 사람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단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요12:24)
한 사람, 한 알, 무시하지 마십시오.
단 하나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가, 그 '하나'가 되어봅시다.
묵상질문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시나요?
5 오늘 본문과 함께 골로새서 4장 10절, 창세기 25장 19~34절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3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디모데와 같이 신실하고 훌륭한 일꾼을 보내주소서. 아멘.
주님, 문제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갈등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갈등 앞에 담대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주님, 턱없이 부족하고 한없이 연약하지만,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도록,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묵상한 것에서 기도제목을 찾고, 한 줄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합시다.
골 4:10, 창 25: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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