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

[56]이스라엘 왕이 근심합니다 (왕상 20:31~43) (CBS)

colorprom 2016. 9. 2. 14:53

[56]이스라엘 왕이 근심합니다 2016년 9월 3일 토요일



열왕기상 20:31~20:43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성경 길라잡이


벤하닷이 왕께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34절):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전쟁을 하기 전에는 벤하닷이 조공을 요구했지만, 두 번의 전쟁 후에는 벤하닷이 아합에게 조공을 약속한다.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42절):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합에게 전한다.

바로 아합의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아합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아합의 죄악에는 심판의 모습으로 드러남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합니다 2016년 9월 3일 토요일


아합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대의가 아니라 자신의 눈에 기쁜 일이 중요했습니다.


아람왕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가 제시하는 조공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일의 대가는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풀 뿐 아니라 아합의 죄에도 상응하는 벌을 선언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과 그의 조공물은 아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아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노략물을 탈취한 도적이 되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그 결과를 보응으로 받게 됩니다.

벤하닷을 대신해서 생명을 잃게 되고, 그의 나라는 아람을 대신해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그 은혜를 불순종으로 갚음으로써 결국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은 영원하지 못하고 반드시 그 얼굴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일상에서 작은 거짓말이나 잘못은 대세에 큰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큰 성공을 이루고 나면 작은 잘못은 조용히 묻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어떤 면에서 작은 악을 묵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합이 벤하닷에게 승리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법과 규정을 살짝 어겨서라도 더 풍족한 삶의 환경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삶이 자신의 부정을 드러내는 덫으로 작용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사랑했던 아합이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케 하심으로 도드라졌던 것처럼,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고 해도 성공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부각됩니다.

일상을 마주하는 우리의 걸음이 무엇을 향해있는지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2019년 7월 20일 토요일)


선지자 한 사람이 주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명령을 따라 자기 동료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말했습니다.

동료는 거절했는데 그 거절은 곧 주님의 명령을 거절한 것이므로 사자(a lion)가 나타나 그를 죽였습니다.


선지자는 다른 사람에게 또 가서 똑같이 말했습니다.

마치 패잔병처럼 여기저기 얻어맞은 선지자는 눈을 붕대로 가려 자신을 위장하고,

길을 지나는 아합 왕을 불러세워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전쟁터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저에게로 포로 한 명을 데리고 와서는, 그 사람을 감시하라고 하였습니다.
포로가 도망을 하면, 제가 대신 죽든지, 아니면 은 한 달란트를 물어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의 종인 소인이 이 일 저 일을 하는 동안에, 그 포로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39-40, 새번역)


그랬더니 아합 왕이 말합니다.

"네가 받아들인 것이니 벌금을 물어야 한다."(40, 새번역)
그때 선지자는 붕대를 풀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종’이 곧 왕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에 아합 왕은 마음이 상하여 화를 내면서 사마리아의 자기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을 수 있으나,

우리가 진리에서 벗어나있다면 그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아합 왕처럼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요?


+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 제 마음을 상하게 할지라도 "아멘"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전쟁에서 패한 벤하닷의 자세는 어떻게 달라집니까?      

선지자의 행동과 말은 왜 아합을 근심하게 했습니까?


기도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성장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