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벨 앞에서 떨고 있는 엘리야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열왕기상 19:1~19:8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성경 길라잡이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2절):
아합을 통해 엘리야의 행동을 전해 들은 이세벨은 분노의 전언을 엘리야에게 전한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엘리야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3절):
이세벨에게 협박을 받은 엘리야는 방금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이세벨에게서 도망친다. 브엘세바는 유다 땅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것으로도 안심할 수 없어서 엘리야는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광야로 도주한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8): 호렙산은 시내산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엘리야의 40일의 여행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연상시킨다(ESV Study Bible).
이세벨 앞에서 떨고 있는 엘리야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바알 선지자들이 죽고 바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곧 바알 신앙으로 또한 자신의 권위를 자랑했던 이세벨의 권위가 당에 떨어진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겠노라고 결심하는데,
사실 바알의 패배로 이스라엘이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세벨은 왕국의 정의와 백성들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철벽처럼 굳건히 서서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엘리야는 절망해버린 듯 보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하고, 이것은 일견 선지자의 모습으로서는 실망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 그를 먹이시고, 쉬게 하시고, 보호하시고, 강건케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그를 인도하십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한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세상 상식을 이기고 하나님을 믿어 그분의 자녀가 되고,
신앙 때문에 맞닥뜨린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더라도,
현실의 실질적인 유혹과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닥쳐오는 현실의 어려움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가깝게만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점차 현실과 타협하다가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그분의 자녀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하여 불안해하고 흔들리는 우리를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던 엘리야처럼 그러한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지친 몸과 마음에 새 힘을 주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나가게 해주십니다.
시험을 이길 힘을 주소서! 2017년 3월 6일 월요일
갈멜산의 엘리야는 대단했습니다.
현존하는 권력인 아합 왕의 비호를 받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상대로
목숨을 건 대결을 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이 여호와냐 이방 신이냐!
이것은 신들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그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혈투였습니다.
객관적인 형세는 여호와와 엘리야의 명확한 약세였습니다.
이 절대적 열세를 뒤집고 승리한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그날 갈멜 산 위에서 벌어진 여호와의 승리는,
두고두고 후세의 신앙인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갈멜 산에서 하나님은 승리하셨지만 그 하나님을 믿는 엘리야는
곧이어 이세벨의 잔인한 복수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엘리야는 승리자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광야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저앉아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저를 죽여주십시오!' 엘리야의 고뇌와 아픔이 가슴을 울립니다.
때로 하나님의 승리가 곧바로 인간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확신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회의에 시달리지요.
그러나 이때야말로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온 몸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입니다.
고난 앞에서 믿음이 촛불처럼 흔들릴 때, 엘리야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왕상19:5)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는 삶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능히 주님나라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엘리야는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할지라도 항상 그렇지는 못하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증거합니다.
엘리야는 예기치 못한 시점에서 좌절과 고통을 겪으며 괴로워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고, 내리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는
이세벨이 그를 죽이겠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광야로 도망칩니다.
그는 광야로 나아가 홀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뭐가 넉넉하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그가 로뎀 나무 아래 누워있을 때 천사가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그를 깨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실의에 빠져있던 엘리야를 어루만져주시며,
힘을 회복할 수 있는 양식을 먹게 해주십니다. 질책하시거나 꾸짖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며 수고해야 하는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과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새 힘을 얻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곤고하고 피곤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눈을 뜨고 일어나, 새힘을 얻읍시다.
+ 지치고 힘들 때마다 위로하시는 주님,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아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 (2020년 3월 2일 월요일)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 사르밧 과부와의 만남,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영적 대결투, 기도로 비를 내리게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확실히 체험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전했던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갑자기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왕상19:2)
이세벨이 자기를 죽인다는 말에 두려움이 생긴 엘리야에게 더 이상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이세벨만 보였습니다.
엘리야는 브엘세바를 지나 광야까지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그곳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왕상19:4)
현실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와 같이 생명이 위협받을 때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인생으로 전락해버린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위기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위기와 고난에 처했을 때, 도망을 간다고,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듯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끊임없이 달려오지만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용기가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엘리야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오늘의 현실을 극복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 엘리야와 함께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엘리야처럼 우리가 삶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 신앙과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주님께 아뢸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우리 앞에 놓인 위협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 내 귀를 주님께 향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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