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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분별하며, 분별하며 사랑하라 (요이 1:7~13) (CBS)

colorprom 2015. 12. 12. 19:42

사랑하며 분별하며, 분별하며 사랑하라 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요한2서 1:7~1:13

 

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9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3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7절):

여기서 미혹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당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가현설주의자들)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혼란을 겪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버린 채 그들을 따르는 일들이 발생했다.

 

‘미혹하는 자(플라노이)’는 길을 잃어 방황하게 하는 사람이다.

7절은 이들의 특징을 2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이다. (가현설주의자들)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 기독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신앙고백의 핵심을 왜곡했다.

둘째, 이들은 세상에 나왔다.

마치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듯이,

미혹하는 자들도 여러 지역을 방문하며 거짓 가르침을 전파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그네를 환대하는 일과 바른 신앙고백을 견지하는 문제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었다.

 

고대문헌 ‘디다케’는 이 문제를 놓고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영접하라.

그러고 나서 너희는 그 사람이 진실한지 시험하는 것을 잊지 말라.

이는 너희가 오른편에 속한 사람과 왼편에 속한 사람에 대해 분별력을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12절): 사도 요한은 직접 독자들을 방문하여 만나기를 원했다.

여기서 ‘대면하다’는 말을 직역하면 ‘입이 입을 향하여’라는 뜻인데,

이는 그만큼 인격적인 교감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성도 간에는 이러한 인격적인 교감에서 나누는 교제가 항상 있어야 한다.

 

묵상과 삶 

 

나그네를 환대하는 일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에게 요구하신 덕목입니다.

이런 점에서 초대교회 역시 나그네를 맞이하고 섬기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과 같은 순회전도자들이 여러 지역을 방문하며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순회전도자들 가운데는 잘못된 가르침을 주장하는 ‘미혹하는 자’, ‘적그리스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사랑과 교회를 진리로 지키는 문제가 서로 상충된 것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요한이서 4절부터 6절까지에서 사랑에 관한 권면을,

7절부터 11절까지에서 분별에 관한 권면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사랑하며 분별하고, 분별하며 사랑하는 갈등의 여정입니다.

사랑의 특징은 내어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저 사랑뿐이시라면, 이 세상은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품은 욕망의 노예가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사랑하느라 내주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다 내주어 고통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절을 내주고, 인격이 지배받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거룩함’의 특징은 차별성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거룩하실 뿐이시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좋을 것을 주시되, 언제나 옳으신 그분 자신을 지키시는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랑을 우리에게도 명하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되, 또한 자신을 진리 가운데 지키는 사랑입니다.

 

삶으로 

 

초대교회에는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들을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호되게 경고하면서,

독자들에게 그들의 미혹에 속지 말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온전한 상을 받도록 힘쓸 것을 촉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사건에는 복음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부인하는 자는 복음을 부인하는 것이요,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같은 거짓과 미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소위 마지막 때라고 말하는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미혹하는 자들이 많고 또 다양합니다.

심지어 이제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부지불식간에 이 같은 미혹하는 자들과 접촉할 수 있고

나아가 그들의 미혹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과 지식에 너무 자만하지 말고 그러한 미혹들을 늘 경계하는 한편,

성도 간의 교제와 성경공부에 더욱 힘쓰도록 해야만 합니다.

특히 교회 바깥에서 진행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꼭 교역자에게 확인해야만 합니다.

 

묵상질문 

 

사랑과 분별이 어떻게 갈등을 일으킬까요?

사도 요한이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며 분별하고, 분별하며 사랑하는 태도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나요?

거짓과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사랑하며 분별하고, 분별하며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타협과 폭력을 거부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날 무수한 거짓과 미혹들에 주의하는 한편,

성도 간의 교제와 성경공부에 더욱 힘쓰므로 이러한 거짓과 미혹의 싹을 애초에 잘라낼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