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신념의 화가 목사’ 이신
(23) ‘신념의 화가 목사’ 이신
성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을 백안시하는 근본적인 우상 철폐주의자들이 더 돈과 직위와 건물과 도그마를 우상화하는 것을 늘 보게 된다. 오히려 이런 것을 멀리하고 본질을 찾는 신앙인이 이단시된 채.
뛰어난 화가이자 목사였지만 한국 교회의 주류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이신(1927~81)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목사로서 철저히 주류 교단에서도 소외된 채 죽어간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처럼.
박사 출신이지만 낮은 곳 삶
전남 여수 돌산에서 태어난 이신은 일제 때 명문인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모태신앙인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심취해 있었다. 부산시립도서관의 미술 관련 책을 모두 다 읽었을 정도였다. 그는 그때부터 형상 이전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어 했다.
상고 졸업 뒤 당시로는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던 은행에 취직했지만, 그는 결혼까지 한 몸으로 상경해 감신대에 입학했다. 한국전쟁 직전 신학대를 졸업하고 전도사로 충남 부여에서 활동하다가 6·25가 터지자 고향인 전라도로 돌아가 활동했다.
그때 전라도 일대엔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 환원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이미 한국 교회의 고질병이던 모든 교파의 분열을 거두고 신약시대의 교회로 돌아가 외국 선교사의 입김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교회로서 일치하자는 성령 운동이었다.
주류 교단을 두고, 그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써 그의 ‘외로운’ 삶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서울과 충청도 일대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이신은 40살이라는 늦깎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려 학비를 조달하고 서울 명륜동 산동네에 두고 온 아내와 4남매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 고달픈 유학생이었다. 그때 중3이던 맏딸이 뇌막염으로 숨을 거뒀지만 와볼 수도 없었다. 그런 산전수전 끝에 그는 앨 고어도 졸업했던 미국 남부의 명문 밴더빌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71년 귀국했다.
미국 출신 박사가 귀했던 시절이었으니 누구나 할 것 없이 그의 출셋길은 보장됐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주요 교단 소속이 아니었다. 국내 어느 신학자도 따르기 어려울 만큼 영어와 일어만이 아니라 히브리어, 헬라어까지 능통한 지성이었지만, 그는 주요 대학에 진출하지 못한 채 산동네 목회를 계속 해야 했다. 그는 산동네에서 정신지체아들을 모아 그림을 그리게 하고, 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에게 글을 가르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미국에서 박사까지 따온 사람이 저게 뭐 하는 짓이냐”고 비웃었다.
설상가상으로 75년엔 정부의 무허가 판자촌 철거 정책으로 오두막까지 헐려 그는 괴산의 산골 교회로 떠났다. 그 곳에서 이신은 손수 돌을 주워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고, 새벽이면 냉수마찰을 한 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이신은 천재적인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였고 멋쟁이였다. 그의 손이 닿는 낡은 물건들은 순식간에 귀한 골동품으로 변하고, 그가 손을 댄 나무는 멋진 목공예가 되곤 했다.
한국 전쟁 이후 영어에 능통한 목사들은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누구보다 잘나갔고, 70년대 ‘미국 박사’라면 금값을 주고 모셔 갔지만, 이신은 매번 부귀영화와 신앙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신념을 택했다. 그는 스스로 자처한 곤궁함 속에서 안빈낙도하며 살면서도 한국 기독교를 위해 큰 외침을 남겼다.
평생 ‘한국적 그리스도교회’를 꿈꿨던 이신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억압과 침략으로 늘 깨달음 없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된 한민족이 신앙마저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가 성서를 읽고 깨달은 대로 성서가 우리들의 역사와 삶에 가르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오직 ‘밥’만이 추구됐던 60년대 미국 유학도로서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물질화하고 경직화해 창조적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둘쨋딸로 여신학자협의회 회장인 이은선 세종대 교수(교육철학)는 “아버지는 속에서 성을 실현하려 했다”며 “그런 어려운 삶속에서도 자식들에게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고 창조적으로 살다 갈 것을 격려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남편인 이정배 감신대 교수와 함께 이신 목사의 책들과 그림들을 전시할 이신아카이브를 겸한 수도원을 강원도 횡성에 세워 아버지의 못다 한 꿈을 이어갈 생각이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울림 - 우리가 몰랐던 이땅의 예수들>(시작 펴냄)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