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받은 간환자 살린 잠의 마법
잠의 마법 속에서 몸과 마음을 개선시키는 수련자들 사진 조현
당신은 하루 24시간 중 어떤 때가 가장 성스럽고 소중한 시간인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여겨온 새벽이나 아침?
아니면 식사시간이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 나의 경우에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나의 하루는 잠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요즘에는 이 시간이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레 일 정도다. 10여년이 넘게 나만의 의식, ‘잠자기 전에 마법’을 걸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성스러운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먼저 가볍게 샤워를 하거나 손발을 씻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만으로 의식의 준비는 끝이다.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에 지나간 일은 생각을 지워버리고 오직 다가오는 시간만을 염두하고 편안하게 눕는다. 그리곤 ‘잠의 마법’이라 할 수 있는 잠자기 전에 하는 나만의 입면의식을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듯 읊조린다.
다음엔 눈을 감고 손발이 차가운지 따뜻한지를 먼저 살펴보고 복부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세 번 한다. 그리고 몸의 각 부위를 머리에서부터 척추와 다리를 물 흐르듯이 바라보고 이어 눈코귀입에서부터 몸의 장기를 순차적으로 바라보며 몸 전체를 편안하게 이완한다.
그리곤 우리 몸의 끝인 발바닥 중앙에 있는 용천혈에 코가 있다고 생각한 뒤 마음을 집중하며 들고나는 호흡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채 10호흡을 바라보기도 전에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요즘에는 고요한 상태로 두세 시간을 평화롭게 내 몸과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고요한 상태에서는 숙면에서보다 강력한 자가 치유력을 발동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잠의 마법’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하게 장소를 찾아 헤매거나 없는 시간을 쪼개는 것도 아닌 매 잠자리에서 실행할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의 수고로움에 비해 그 결과는 깜짝 놀랄 만큼의 성과를 안겨준다.
이러한 ‘잠의 마법’은 지난 20여 년 동안 수많은 수행법을 몸소 겪어본 끝에 얻어낸 값지고 축복된 선물이다. 이제, 이러한 공간을 통해서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음에 그저 기쁠 따름이다.
필자 최상용 박사
5·18 때 투옥 고문 당한 이후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가 가져다 준 축복의 선물
‘잠의 마법’을 체득할 수 있었던 계기는 한때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려는 나의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가장 역동적인 삶을 살아야 할 20대가 내 인생에 있어서는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민주화의 열풍이 몰아닥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다 그러했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육체적 고난과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시기였다. 투옥과 고문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받으신 아버님의 갑작스런 죽음 또한 졸지에 6남매의 가장이 돼버린 나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부쳤던 것이다.
그 때 겪었던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피폐가 가져다 준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며 가슴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 고통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술뿐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고는 원만한 대인관계는커녕 웃음을 머금을 수도,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맨 정신으로는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어쩌다 술에 취하지 않는 날에는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렇다 보니 어둠이 내린 밤이 두렵기까지 하였다. 나의 2-30대는 쉴 사이 없이 찾아드는 이 같은 트라우마가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깊은 수렁과도 같은 고통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40대에 들어서면서였다. 바로 내 자신을 성찰하고 분노와 불안을 삭여낼 수 있었던 ‘잠의 마법’을 터득하고부터였다. 나만이 혜택을 입은 건 아니다.
한 때 언론에 몸담았던 내게는 친형제처럼 가까운 후배가 있었다. 그는 국내외를 넘나며 저명한 의사는 물론 일가를 이룬 수련인, 심지어는 명성을 떨친 무속인과 재야 의학자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아 기사를 쓰던 기자였는데, 자칭 타칭 ‘*도사’로 불리울 정도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B형간염을 앓고 있었으나 이러한 사람들을 취재하며 자신의 몸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진귀한 약재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름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마 2004년 여름쯤으로 기억된다.
“형님! 며칠 전부터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속도 더부룩한 게 영 기분이 개운치 않은데, 왜 그러지?”
직감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안고 만나보니 뱃속에 물이 가득 찬 상태였다.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는데, 심각하게도 간경화가 악화되어 비장까지도 붓을 대로 부어 별달리 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는 것. 담당의사는 1년을 넘기기도 어렵다며 엄포 아닌 엄포를 놓았다. 그는 한 달여간 입원하며 복수를 빼고 기본적인 약물을 처방받았다.
‘잠의 마법’이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
마침, 내가 근무하고 있던 연구소에 필요한 책을 집필할 일도 있어 핑계 삼아 40일의 휴가를 얻었다. 식사를 담당하실 그의 어머니와 셋이서 강원도 산골의 펜션을 요양지 겸 ‘잠의 마법’을 전수할 장소로 선택했다. 웬만한 수련법은 익히 알고 있었던 그였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심각한 질병에 노출되다보니 손발은 차가웠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다. 먼저 소화력과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독성이나 약성이 약한 음식물을 위주로 소식케 하였고, 낮에는 손발을 따스하게 할 목적으로 걷기와 가벼운 체조라 할 수 있는 도인법을 하면서 ‘잠의 마법’을 익힐 준비를 하였다. 비가 오면 무릎까지만 따뜻한 물에 담그는 족욕을 통해 상기된 열을 내렸다. 손발이 차가우면 마음집중도 안될뿐더러 숙면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낮에는 산책과 체조를 통해 몸의 긴장을 해소했고, 밤에는 ‘잠의 마법’을 익히며 보내자 점차적으로 거무스레했던 얼굴색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법이 통하고 있었다. 그렇게 40일을 함께 보냈는데, 24시간 내내 ‘잠의 마법’을 위해 하루를 보낸다고 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40일 간의 합숙훈련이 끝난 후, 그는 일상으로 복귀해서도 매일 밤 ‘잠의 마법’을 정성스럽게 시행했고, 1년의 휴직기간을 통해 몸을 회복하여 다시금 언론인으로 돌아갔다. 8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는 매일 밤 ‘잠의 마법’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심신수련에 있어서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섰다.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숱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수련의 길로 들어선 나였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대부분 병이 깊어질수록 세상에서 가장 쉽다는 잠을 못 잔다는 거였다. 이러한 고민이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숙면에 이르는 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잠의 마법’이라는 심신수양법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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