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교회에서 이정라사모님이 간증하신 내용입니다.
이정라사모님은 안식교, 박정환목사님의 부인이며, 종파에 관계없이 제가 깊이 존경하는 친구입니다.
허락없이 이정라사모님의 글을 제 블로그에 옮겨놓습니다.
전체 교인들 앞에서 간증한 내용이니 야단 안맞겠지요?! *^^*
35년 동안의 지난 세월에서 느낀 축복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 (사모 이정라)
이 아침, 저는 시대의 소망에서 간증에 대해 표현한 것 처럼, 천사들이 듣기를 즐겨하는 '새노래'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고자 합니다.
살아가면서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게 되는 전환점을 누구나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대학1학년 때, SDA 영어학원을 통해 안식일 진리를 깨닫고 장로교에서 개혁하게 된 것과 영어학원 교회를 통해 만났던 진리의 말씀 중,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재림기별과 건강기별이었습니다.
열심히 사경회, 건강세미나 등에 참석하고, 관련된 책들ㅡ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졌으나 후에는 깊은 신뢰로 즐겨 손에 들었던 예언의 신의 말씀들을 읽어가면서, 저의 삶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날들을 통해 저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모양과 틀이 굳혀져 갔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 2학년 가을 즈음, 재림청년들의 결혼을 위한 결혼세미나가 서울 본부 교회에서 열려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결혼에 대한 어떤 계획이나 생각조차 없었지만 청년 그룹에 이끌림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4학년 때, 슈바이쩌와 나이팅게일의 자서전을 읽고는 이렇게 살면 삶이 보람되고 의미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히 독신을 생각해 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결혼으로 자신의 꿈을 접는 많은 여성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축복하셨다는 기별은,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세미나를 마치고 걸어나오면서 이렇게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제정하시고 축복하셨으니 결혼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 영광돌리며 살고자 하는, 저와 같은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래서 두 사람이 합하여 갑절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게 해 주세요"
그것이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드린 저의 첫기도였습니다.
대학 3,4학년 때, 결혼을 위한 접근들과 청혼을 받았으나 결혼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했던터라 마음에 와 닿지 못했습니다.
졸업후, 유학을 계획하며 추진하던 제게 결혼이 거론되었습니다.
과년한 딸을 결코 혼자 외국으로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으로 인해 맞선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삶에서의 첫번째 연단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결혼을 위한 시작과 과정이었습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같은 삶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주님의 영광 위해 살고자 하는 바램이,
장로교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어머니와 사업상 신앙생활에 방학중(?)이셨던 아버지께
쓰디쓴 아픔과 크고 긴 고통을 드리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애서 좋은 신랑감들과 선을 볼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저의 반응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기에, 결국, 어머니께서는 제가 믿음이 다른 사람과 연을 맺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시고는, 너의 교회에서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오라셨습니다.
그당시, 저는 박사님과 SDA영어학원 같은 반에서 공부하며 저의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연모한 한 학원생(미스 송)이 저를 그 사이에 끌어들였는데
결과적으로, 그와 제가 친구가 되는데 한 역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질병으로, 저는 저의 반려자로 재림교인 만을 생각했기에, 저희는 순수하고 부담없는 친구로 지내게 되었으며, 또한 그에게 복음을 나누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선을 보고 나서 거절함으로 어머니께 꾸중을 듣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울적한 날에는,
그를 만나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고 말없이 들어주는 그로인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일년 정도 부담없는 친구로 지내다, 그동안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평가로 마음문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어 막역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런 그가 생각나, 한 친구가 있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셨습니다
ㅡ 어느 대학을 졸업했고 동갑이다 하니, 군대는 갔느냐? 아니요. 왜 못갔느냐? 죄골신경통 때문이라 하니 그 자리에서 '그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문제되어 부모님께 긴 5 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실망과 고통을 드리는 불효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많은 회유와 꾸중과 질책들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대꾸나 저항도 할 수 없었고, 죄스러운 마음은 그저 죄송하고 답답했습니다. 한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역한 일이 없었던 제가 결혼 문제로 불효를 저지르게 되니 당황하고 난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에 부복하지 않았던 용기는 어디에서 왔는지... 이는 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장성하였으나 어리석고 고집스런 여식에 대한 염려로, 어머니의 사랑은 40일 작정기도, 철야기도 등을 쉬지 않고 계속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힘이 들었던 것은,
이 결혼을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며, 그분의 섭리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여,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결혼이 진정 주님의 뜻이시라면 돌과 같이 굳은 부모님의 마음을 봄눈 녹듯이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과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주님의 섭리라고 믿겠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마음은 갈수록 더 단단하게 굳어지셨습니다.
건강진단서에 '불치'라는 판정과 불편하고 병약한 그를 보신 부모님의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부모님의 반대가 점점 강경해 지시니, 그와 저는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과정을 번복했는데,
헤어지고 난 때 마다 이해되지 못했던 한 사실은, 기도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것을 아신 부모님의 질책으로 맘 상한 날, 침대 앞에 무릎 끓고 하나님께 토로하며 새벽을 맞이한 날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일어서기 전에 저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주님 감사합니다'는 말이 흘러나오곤 하였습니다.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와 이모님께 각각 한 신묘한 꿈을 주셨습니다.
마치 저희의 만남과 미래를 보여주시는 듯한...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한결같이 완강하셨으며,
점점 더 강경해지시는 부모님과 저로 인해 기절까지 하신 어머니를 뵈면서,
그리고 설상가상, 영어학원 교회에서 안식일 학교장, 여집사로 교회를 섬기던 제가
재림교인이 아닌 사람과 사귐으로 받는 시선과 교우님들에게 본이 되지 못해 마음은 무겁고 불편하고 외로웠습니다.
그 어디에도 제가 쉴 곳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미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신을 놓으려고도 해 보았으나 오히려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더 이상 그런 상태로 지내는 것이 너무도 힘이 들어 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자!"
나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힘들고 연약한, 고아원이나 소록도의 나환자들을 돌보는 일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골자는, 부모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테니 염려하지 마시라는 것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심정에 이해를 구하는 등의 간곡한 글이었습니다.
눈물, 콧물 떨어뜨려 가며 몇장 쓰고는 이민용 가방에 최소한의 수수한 옷 몇가지와 예언의 신의 말씀들과 성경책들을 넣고 가방을 싸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와락 방문을 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시간이 새벽 3시 전후로 생각되는데,
제 방의 풍경을 보신 어머니는 아연실색 하시며 아무런 말씀도 못하시고 뒤돌아 가셨습니다.
일찍 주무시고 일찍 깨시는 아버지께서 새벽에 위층 제 방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느끼시고는 어머니를 깨워 올라가 보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숨을 죽이며 걸었는데도, 안방 위가 바로 저의 방이라 조용한 새벽에 움직임이 전해졌나 봅니다.
하루종일 숨 죽이며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폭풍전야 같았던 그 두려운 기운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 사건 후에 한동안, 숨을 쉬는 여유와 자유를 조금은 불안한 가운데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께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지만, 죄스럽고 답답한 상황에서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 결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음대로 하십시요!
주님께 다 맡깁니다!'라고.
그리고 저의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확신이 서지 않아, 결혼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릴 때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대로 하시기 만을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40일 작정기도를 마치신 1984년 10월 어느날,
그 날도 여전히 못난 여식 위해 새벽기도에서 애통하며 절규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셨습니다.
"사람의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막았구나"는 깨달음으로 '통회하시며 우셨다'고 수년이 흐른 후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새벽기도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께서 결혼을 추진하셨습니다.
저의 가정의 법이셨던 아버지께서 외국에 가 계신 동안에 용감하게 이례적으로 강행하셨는데, 평소에 순종적이셨던 어머니로서는 행하실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시는 어머니께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을 저희에게 보여주셨으며,
돌같이 단단히 굳은 아버지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저희의 만남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으셨음을 확신하며, 마침내 죄인에서 자유인이 된 기쁨과 감사로 큰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결혼 당일 아침, 아버지께 인사드렸더니, 봉투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의지하고 믿음 안에서 열심히 살도록 하여라. 그것만이 너희가 행복하게 되는 길이다"
결국은, 하나님과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니,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한 결혼은 연단의 끝이 아니고 서주에 불과했습니다.
결혼후, 그와 함께 한 28년 10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깨달은 다섯가지 축복을 말씀드리며 저의 시간을 줄이고자 합니다.
첫번째 축복, 결혼에 이르기까지 겪게 된 날들은, 마치 끝도 없는 터널을 홀로 지나는 것 같았을 때, 저의 유일한 위로와 힘은 매일 기도와 성경말씀과 예언의 신의 말씀를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말씀들을 묵상하며, 힘들 때 마다 찬미를 부르며 저의 아픔과 외로움을 유일한 해결자이신 주님께 토로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이 주신 말씀들은
"나의 영혼아 잠잠하고 하나님만 바라라.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편 62:5-7)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역경의 시간 중에, 하나님만 바라며 기다리는 믿음과 인내를 훈련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면, 그 훈련들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 믿음의 큰 복을 받게 하셨슴을 찬양합니다!
두번째 축복은, 그의 건강 회복을 돕기 위해 관장, 녹즙 만들기, 식사 준비들로 바쁜생활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으나 많은 시간이 지난후, 저의 한 큰 잘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매일의 생할에서, 주님께서 제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하지 못하고 제가 주인이 되어 주님 앞서 저의 힘으로 해 내려고 분주하게 살다보니 시간에 쫒기고 육신은 피곤하여, 그렇게 열심히 읽던 말씀과 기도생활이 소원해졌고 형식적인 것이 되어 저의 영혼이 병들기 시작한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고로, 곤해진 영혼과 육신은 작은 일에도 서운한 맘과 불만이 쌓여 다툼이 일었습니다.
선과 악의 투쟁에서 악에게 기회를 주어 상처와 균열을 가져오게 되었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악한 영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결혼전에 배운 그 은혜와 교훈을 잊지 않고 새로운 삶에 주님을 모시고 잘 적용했더라면
결코 겪지 않았을 슬픔과 상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이러한 죄송함은 지금도 가끔씩 고백하며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절감합니다.
변화라면, 그때는 인식조차 못하고 살았으나 지금은, 성령님의 인도로 잘못을 느끼게 해 주실 때
즉각 반응하며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살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번째 축복, 삶의 힘든 여정들을 만났을 때 당시에는 힘들었으나 나중에는, 적어도 몇년 후에는
좋아지겠지 하며 살아왔는데, 갈수록 그 정도는 더 무거워지는 듯 하였습니다.
그 고통과 상처는,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주님께서 준비하신 십자가를 맘대로 해석하며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결과로 갖게 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는 결심을 하게 하셔서
자신을 살피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게 하심으로 조금씩 더 주님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네번째 축복, 그의 대학원 졸업후, 그와 함께 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게 된 여러 역경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많은 축복들은, 오히려 모든 형태의 역경들을 통해서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허물많은 제가 온전해지도록 지금도 그 일을,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역경들을 통하여 이루고 계심을 찬양합니다!
역경이 없었다면 제가 과연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하였을까? 자문하며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부조와 선지자 129쪽: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시련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자신들의 성실성과 순종으로 그들 스스로가 영적으로 부요하게 되며 그들의 모본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의 근원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라”
(렘 29:11)라.
우리의 믿음을 격렬하게 시험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바로 그 시련들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짐들을 그분의 발아래 놓고, 그대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평안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하기 위함이다. "
다섯번째 축복,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만남에 관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과
그 사람의 성향에 가장 적합한 사람과 만나게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어린아이였던 저의 기도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드린 모든 기도들에 신실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은, 저희의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였고, 그분께서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저같이 어리석고 단순한 사람이 하나님를 만나 그 사랑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이 길이 최선이었다는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지금까지 은혜 가운데서 저를 붙드시고 하늘 본향으로 가는 길로 인도해 오셨음을 찬양드리며,
새롭게 회복된 그곳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 때를 고대합니다.
그곳에 들이기 위해 오늘도 도우시며 중보하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그곳에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면서 저의 '새노래'를 마칩니다.
'+ 크리스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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