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7일, 일요일
교회 끝나고 아버지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졸다가 문득 깨어보니, 큰애가 다니는 교회 앞이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 그래, 그렇지 않아도 큰애가 예식 올릴 곳, 한번 와 보라고 했었겄다....
한창 예배 중인 아이를 뒷자리에서 기다려 만났다. 물론 사윗감도 같이.
식장으로 쓰일 예배당, 그리고 식당, 중정같은 하늘이 뻥 뚫린 마당...좋다, 좋다!
결국, 작은 결혼식은 멀리, 머~얼~리 날아갔다!
- 엄마, 청첩장은 몇 장 할까요? 한 천장? 적게 하나, 많게 하나 값은 별 차이 없어요.
에이...난, 내 친구들에게는 안 돌릴껴...내 친구들에게라도 안 돌릴껴~!
대낮에 본 사윗감은...되게 낯 설었다. (하기사 몇 번 보기나 했나?!)
어라? 눈 밑에 꽤 큰 흉터가 있네...키는 꼭 나만하구만...ㅎ~
환한 대낮에 사윗감과 함께 있는 큰애도 좀 낯 설었다....왠지 밀려나는 기분? 나와 너희들...*^^*
친정아버지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전화기로 알아보는 사윗감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 빨리 못보내 안달이구만~
- 들어가, 예배 후에 모임 없냐? 들어가~
- 아, 4분 뒤에 ****번 버스가 있네요. 가는 길은 조금 다른데, 내리시는 곳은 같아요.
버스에 앉아 버스 밖의 두 아이를 보며 문득 유리창에 미묘한 바람이 흐르는 듯 했다.
일부러 뒤로 멀어지는 두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 떠날 때는 쿨하게, 뒤돌아 보지 않는겨~! ㅎ~
옛날에, 외국에서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항에 마중나오셨다가 잠깐의 만남만으로 우리와 인사를 하고,
시집식구들과 함께 시집으로 들어가는 나를 배웅하시고, 공항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실 때,
얼마나 섭섭하던지 울었었다던 엄마...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나도 우리 큰애를 내 자식이라고 품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너는 시집사람들에게 정 붙여야 한다고 말할 것 같다.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까진 아니어도, 친정보다는 시부모들과 가까이 하라고 말할 것 같다.
큰애도 나처럼 섭섭해할지 몰라도...
원래, 같은 편끼리는 모른 척 하는겨...내가 너를 내 편이라 하면, 사위는 또 얼마나 섭하겠나?
새 사람들과 사귀기도 마음이 벅찰텐데, 왜 시집만 챙기냐고, 우리는 모른체 하냐고 닥달하지 않을껴...*^^*
병원에서 아버지께 손주사위 사진을 보여드렸다. 마침 카톡으로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손바닥만한 사진을 보시더니, ' 좋다, 됐다..'하셨다.
병원에 들어가신 지 7개월여 만에 처음 휠체어로 올라가신 빌딩옥상 작은 공원에서.
이에 끼지않는다고 좋다하신 '카스테라'를 드시고.
처음 보신 하늘, 비를 안은 바람을 맞으시며, 작고 예쁜 꽃들이 있는 시멘트 공원에서...
- 다음에는 저기 저 방에서 도시락이나 바나나를 먹어도 좋겠네요....
휠체어로 산보다니는 것은 가족이 와야 가능한 호사이다. 공동간병인들에게 바랄 수 없는.
그동안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 나 저기 (옥상 작은 공원에..) 처음 가봤어...
나중에 도착한 남편과 막내부부에게 몇 번이나 자랑하셨다.
아버지는 밥의 반을 뚝 떼어 내게 먹으라 하시는데, 간이 없는 음식이라 맛이 없어 애를 먹었었다.
교회에서 단무지를 보자 꾀가 났다. 얼른 조금 얻어 비닐에 넣었다.
그런데, 왠 걸~ 오늘, 아버지 최고의 반찬이 되었다.
- 이거이거 버리지 말고 넣어놔. 이거 없어지면 안돼, 야, 이거 정말 맛있다. 좋다.
그릇도 없이 비닐에 넣어간 노란 단무지가 최고 대접을 받았다.
친정에 가 엄마와 또 저녁을 먹다가 chA, 동아채널에서 고발프로를 보았다. 주제가 '빙초산'이다.
하필 아버지 최고의 반찬, 노란 단무지, 피클, 냉면 등등이 초산 작품이라는 거다.
에이~~~먹는 것에 대한 나쁜 짓은 제발...강하게 처리해주삼!!! 에이...
이 프로를 안봤더라면 무지 행복했을텐데...
집에 가자고 안하시고 편안해 보이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매일 못가서 죄송합니다...매일 잠깐씩이라도 휠체어 밀어드리고 바람 쐬어드리면 참 좋을텐데...
그나마 창문이라도 활짝 열수있는 병실이 다행이다.
오늘 비오는 소리, 들으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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