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명나라 이여송장군의 참모로 우리나라에도 왔던 원료범이라는 사람이, 늦게 얻은 아들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경험에서 얻은 깨우침을 책으로 남긴 것입니다.
I. 立命
어려서 어머님의 명을 따라 의술을 배우다가 절에서 만난 한 도인을 한동안 집에서 모셨는데, 그 도인이 나의 장래의 일을 아래와 같이 점쳐 주었다.
모년 제 몇번째 시험에 급제하면서부터 관록미를 봉급으로 받을 터이고 모년에 공사가 되고 모년에 사천대윤에 임명될 것이다. 수명은 53세 8월 14일 축시에 집에서 병사할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은 일생에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후 부,현,도에서의 시험일자와 급제번호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노인이 지적한대로 맞았다. 이로써 나아가나 물러가나 정한 명수가 있고 더디나 빠르나 다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인생의 운명을 알게 되자 조금도 다른 욕망을 내지않게 되어 마음은 극히 안정적이 되었다.
그후 서운사에서 운곡선사를 만나 3일 낮과 밤을 잠도 잊은 채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운곡선사와의 대화
운곡 : 무릇 범부가 성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망념에 얽매이기 때문인데, 당신은 3일 밤낮동안 망념이 통하지 않으니 대단합니다.
나 : 내 일찍 도인을 만나 일생의 일을 점친결과 사람의 길흉화복 생사존망이 다 정한 명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으므로 다른 욕구가 일어나지 않아 당연히 망념도 없는 것입니다.
운곡 : 내가 당신을 높이 평가하여 호걸의 선비로 알았는데 평범한 범부로군요. 사람의 명수는 태어난 아침부터 죽는 날 저녁까지 정한 운명을 가지고 출생하는 것이지만 극히 선한 사람과 극히 악한 사람은 일생에 행한 선악의 업에 따라 타고난 운명을 깨뜨리는 것이오. 오직 평범한 범부만이 정한 운명에 결박되어 일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나 : 그럼, 타고난 운명도 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운곡 : 천명도 내가 만드는 것이요 화복도 내가 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書經에 '선을 행하면 백가지 복이 내리고 불선을 행하면 백가지 재앙이 내린다'고 하였는데, 정해진 운명이 변하지 않는다면 선을 행했다고 복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나 : 맹자가 말하기를 '구하여 얻는 것은 나에게 있음이오 구하는 것이 무익한 것은 구하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라' 했으니 이것은 인의와 도덕은 마음에 있는 것이어서 구하면 얻지만 공명과 부귀는 밖에 있는 것이니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는 말인데 이 말은 그럼 잘못된 말입니까?
운곡 : 당신의 해석이 틀린 것입니다. 길흉화복이 모두 마음에서 오는 예를 들자면, 어떤 악인이 흉기로 남에게 해꼬지를 한다면 그 살상의 도구는 밖에서 온것이 아니요 그 사람의 분노하는 마음에서 온 것이요, 전설적인 효자에게 영험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모두 지극한 효성스러운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즉, 인의도덕뿐 아니라 부귀공명도 다 마음에서 오는 것으로 이것이 '만물이 다 내 마음 안에 갖추어져 있다.' '모든 복밭은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밝힌 뜻입니다. 우리가 오직 마음으로 구한다면 인의도덕을 얻을 뿐 아니라 부귀공명도 얻을 것이요, 마음을 반성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외부에서만 구한다면 인의도덕도 부귀공명도 둘다 잃고 마는 것입니다.
나 : 이해가 안됩니다. 왜냐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다 복상을 타고 나는데 내 상은 박복하니 어찌 높은 관직에 오르기를 바랍니까. 또한 흙이 찰지면 초목이 무성하고 물이 맑고 물살이 세면 고기가 없는 법인데 나는 성격이 너무 강하니 아들이 없을 첫째 이유이고, 봄에 화기가 풍기면 만물이 소생하는 것 같이 성질이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자녀가 많을 것이나 나는 온기가 없고 화를 내는 일이 많으니 아들이 없을 둘째 이유이고, 자비스러운 마음은 만물을 살리는 근본인데 나는 기품이 교만하여 나를 낮추어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니 아들이 없을 셋째 이유이고, 말이 많으면 원기를 손상시키므로 섭생하는 사람은 침묵하는 편인데 나는 말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이미 원기가 쇠해졌으니 아들이 없을 넷째 이유이고, 술을 즐겨 과음하고 밤을 새워 일하여 신기를 손상하니 이또한 아들이 없을 이유입니다.
운곡 : 맞습니다. 다 각자의 복상에 따르는 것이나 지금부터라도 일대 용맹심을 갖고 힘써 음덕을 쌓고 만물을 용납하고 자비를 행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종전의 박상은 죽고 복상이 될 것입니다. 易經은 성인이 군자를 위하여 길사에 나아가고 흉사를 피하기 위하여 가르친 책인데 그 책의 처음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선을 쌓은 집에는 경사가 남아 돌고 불선을 쌓은 집에는 재앙이 남아 돈다'고. 지금부터 소원을 세운 후에 날마다 선한 일을 힘써 행하고 그 행한 선한 일의 수를 매일 기재하십시오. 숫자가 3천이 되기 전에 당신의 소원이 성취될 것입니다.
새 운명 창조의 작업
그후 나는 단계적으로 서원을 세운 후에 마음을 다하여 밤낮 선행을 쌓고자 힘쓰고 항상 삼가고 두려운 마음으로 악행이나 악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이같이 하였더니 점차 노인이 예언한 것보다 더욱 길하게 관직에 올라가게 되었고 드디어 너를 낳았으며 나의 수명도 53세에 끝마친다 하였으나 그동안 아무 병고없이 지금 69세가 되었다.
너는 아직 젊고 수행이 미숙하니 너의 천명은 알수없다. 만약 천운이 열려서 고관이 되면 항상 미천한 때를 생각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면 항상 곤란하던 때를 생각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공경을 받으면 신의 도움을 감사하고, 세상이 존중히 여기는 가정이 되었다면 항상 겸손하게 낮추며 학문이 상달되었으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라. 남의 어려움을 구하여 주며 스스로 허물 고치기를 힘쓰라. 하루의 허물을 범하면 하루의 선행이 소멸되는 것이다.
II. 겸손
역경의 64괘 중에서 6효가 모두 길한 것은 오직 지산겸괘 하나 뿐이다. 이유는 산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괘는 높은 산이 낮은 땅 밑에 있는 상이므로 이것은 겸손을 상징한 것이다. 겸손이란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하늘은 가득찬 것을 덜어서 비어 있는 곳을 채우며, 땅은 가득찬 것을 덜어서 비어 있는 곳을 메꾸며, 귀신도 가득 찬 것은 해치고 부족한 것에는 복을 주며 사람도 가득찬 것은 싫어하고 부족한 것을 좋아한다. 가득차다는 것은 교만함을 말하는데 교만함은 천지신명이 다 싫어하고 겸손함은 천지신명도 좋아한다. 지산겸괘가 의미하는 것은 겸손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다 길하고 형통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書經에 '자만심을 가지는 자는 천지신령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도 미워하므로 모든 일에 손해만 본다'는 말이 있다. 만심자는 자기의 마음씨가 천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손해를 불러오는 것은 생각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원망하므로 더욱더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천지신령과 사람에게 궁휼함을 입어 무슨일에나 유익한 일만 생기며 오히려 이를 천지신명 및 조상의 음덕이라고 생각하므로 더욱더 복을 받는 것이다.
선한 일이나 음덕은 반드시 물질을 베푸는데 한하지 않고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도 무량한 덕이 있는데 겸손함은 돈한푼 쓰지 않고도 세상재물을 써서 하는 공덕보다 더욱 수승한 것이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화려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남과 경쟁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하는데 이와 반대로 모든 사물을 남에게 보이기 보다 오히려 절제하고 삼가는 마음이 겸손이다.
좋은 옷을 입을 사람이 하루 입지 않으면 그 옷을 천지신령에게 하루 공양한 것이며 좋은 음식을 먹을 사람이 하루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을 천지신령에게 하루 공양한 것이되고 큰집에 살 사람이 작은 집에 거주하면 그만큼 천지신령에게 공양하는 것이 되며 자신을 위하여 사치를 하는 것을 끊는 것은 그 사치할 사물을 천지신령에 공양한 것이므로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공덕을 쌓는 일은 널려 있다.
'멋진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운명을 뛰어 넘는 법 (2) (0) | 2013.03.16 |
---|---|
[책] 어려운 사람, 불편한 관계, 어떻게 대할 것인가? (0) | 2013.03.04 |
[스크랩] 윤회(完) (0) | 2013.02.19 |
[스크랩] 윤회(2) (0) | 2013.02.14 |
[영화] 아무르 / (2013년 2월 9일 /시네큐브) (0) | 2013.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