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중국][동북공정]중국 베이징 국가 박물관의 한·중·일 청동기 유물전

colorprom 2022. 9. 19. 13:58

[동서남북] “동북공정은 학술 문제”라는 중국의 거짓말

 

정치 논리로 고구려사 왜곡 뒤 ‘학문 영역’이라 강변하는 중국
이제는 고조선 역사마저 否定… 한국사 전체를 집어삼키려는가

 

입력 2022.09.19 03:00
 

중국의 고구려사(史) 왜곡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2004년 9월,

서울에서 고구려사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다.

 

참석한 중국의 동북 공정 주역 학자들 속에서 어두운 표정의 노(老)학자 한 명이 보였다.

옌볜대 발해사연구소장을 지낸 조선족 방학봉씨였다.

 

중국 학자들이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다”

“고구려는 중국 역사가 다민족 대가정(大家庭)을 이뤄오는 과정의 하나였다”

소리 높여 강변할 때

그는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

평생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연구했던 그 역시 같은 생각인 건가?

마침내 단상에 올라 질문을 받자, 소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논문에서 고구려의 성을 도성(都城)이라고 쓴 것은 한 국가의 수도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뜻인지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 아니다’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었지만

더 이상 말은 없었다.

 

이런 말조차 정치적 문제 때문에 돌려서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존재가

마치 그 옛날 중국 땅에 남은 고구려 유민(遺民) 신세인 듯했다.

16일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 입구
/연합뉴스

 

최근 중국 베이징 국가 박물관한·중·일 청동기 유물전의 한국 역사 연표에서

중국 측이 멋대로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학술 문제는 학술 영역에서 전문적인 토론과 소통을 할 수 있고

정치적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의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 게시된 ‘한국 고대 역사 연표’.
표 왼쪽 ‘시대/왕조’ 칸 위에서부터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고조선, 신라, 백제, 가야,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라고 적혀 있고 고구려와 발해는 빠져 있다. /웨이보

 

과연 그런가?

중국의 동북 공정은 학자들의 ‘학술적 논의’가 아니라 그 시작부터 철저하게 정치적인 공작이었다.

 

1963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압록강 서쪽이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는 것은 황당한 논리”라고 했듯,

중국은 1970년대까지도 고구려가 한국사의 나라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자국 내 여러 민족의 역사도 중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본격화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중국 땅에 존재했던 고구려중국의 역사라는 얘기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 튀르키예 영토인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사도 바울은 튀르키예인이고,

현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출신 이마누엘 칸트는 러시아 철학자인 셈이다.

 

2002년부터 5년 동안 공식적으로 수행된 동북 공정의 주체 변강사지연구중심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의 한 기관이었다.

분명 국책 연구였다.

2004년 한·중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구두 합의를 했지만,

지린성 사회과학원의 ‘동북사지’는 2017년까지 발행돼 역사 침탈을 계속했고

바이두 백과 등은 고구려가 중국사라는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역사 침탈이 고구려와 발해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이 연구서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에서

백제와 신라도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쓴 것은 2007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10년 뒤인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했다는 시진핑 중 국가주석의 말을 전했다.

 

이번 연표 왜곡 사태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연표의 원자료를 제공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기원전 2333년이라고 적어 줬으나,

중국 측은 이것을 ‘고조선 연대: ?~기원전 108년’이라고 둔갑시켰다.

고조선의 전체 역사를 부정하고

자기들이 지방 정권이라고 보는 말기의 위만조선만 인정하겠다는 속셈이다.

 

중국은 끝내 이 연표를 수정하지 않고 떼어냈다.

 

트럼프가 들었다는 시진핑의 말처럼,

중국은 한국사 전체를 ‘속방(屬邦)’의 역사로 집어삼키려는 것이라고 볼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