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우영우’와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는 리더십

colorprom 2022. 8. 30. 17:37

[朝鮮칼럼 The Column] ‘우영우’와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는 리더십

 

리더가 먼저 의견 표출하면 부하 직원은 입 다물 수밖에
여러 의견 듣고 결정 내려야 결속력 다지고 추진 동력도 얻어
드라마 속 경청하는 리더처럼 공론화·의견수렴 거쳐야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2.08.30 03:20
 
 

‘우 to the 영 to the 우’라는 힙합 인사법이 인상적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신생 채널의 약점을 딛고 공전의 히트를 쳤다.

평소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 필자까지도 한 번씩 볼 정도였으니

꽤 성공한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최근 10년간 본 드라마 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하는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였다.

이 드라마 역시 방영 초기 시청률 면에서 압도적이진 않았으나

입소문을 타고 특히 중장년층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드라마는 결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 곁엔 없는, 그러나 있었으면 하는,

일종의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감’을 새삼 일깨워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의 아저씨’는 자신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중년의 남자 주인공이

처절히 짓밟힌 삶 속에서 단 한 번도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을 여주인공을 보살피다

그 스스로 역시 구원된다는 내용이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직 1980년대의 숨결이 남아있는 듯한 동네를 배경으로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눈물 나게 그리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과 함께

지나온 나의 삶이 과연 누군가에게 한 줌의 온기라도 된 적이 있을까 하는

자화상을 마주하게 한 묵직한 드라마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보다는 덜 진중하되 발 빠른 행보를 보여준 드라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던진 화두의 무게는 그에 못지않다.

우리 사회, 아니 우리 개개인이 과연 발달장애인을 포함해 장애인에게

얼마나 따뜻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지 자문하게 했다.

 

친구인 동그라미나 최수연처럼 우영우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그녀를 ‘as is(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곁에 있었으면 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기대하기 힘든

그러한 존재에 대한 소망을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두 드라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캐릭터는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씨가 맡은 박동훈 부장

‘우영우’에서 강기영씨가 열연한 정명석 변호사다.

요즘 흔히 ‘서브 아빠’라고 부르는 캐릭터다.

 

두 사람 모두 삶에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박동훈 부장은 가정이 파탄 난 상태에서 직장에선 만년 부장으로 굴곡진 삶을 버티고 있다.

정명석 변호사 역시 일에만 몰두하다 이혼당하고 위암까지 걸렸다.

 

그러나 이 두 사람 모두 타인을 대할 때 굴절되지 않되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그러나 현실에선 찾기 힘든 리더십을 보여 준다.

 

이들은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부하 직원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준다.

물론 자신의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여기에 방점이 있다.

전문가들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

전문가인 상사가 먼저 의견을 표출하면 부하 직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니 부하 직원들의 얘기를 경청하면서

혹시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나 체크를 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더불어 최종 의사결정이 집단적 결정이었음을 인식하게 해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고 추진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좋은 리더는 부하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결정을 내리는 리더다.

 

현 정부의 인사를 보면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샌델이 얘기한 것 같은 불평등을 심화하는 메리토크라시가 아니라

각 분야에 최고의 전문가들을 임명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의도는 좋았으나 지금까지 여론의 향배를 보면 지지율이 보여주듯 낙제점에 가깝다.

홍보가 부족한 면도 있을 것이고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여당의 내홍도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는 충분히 복잡다기화되어 있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파레토 우위(Pareto superior)’의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책은 수혜자가 있는 만큼 필연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책은 정치적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런 만큼 정책을 공론화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일수록 이를 경시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메리토크라시가 가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서 지지율 반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