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9] 영화와 드라마, 욕설은 이제 그만

조너스는 경험한 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언덕과 눈을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 썰매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높이, 바람 그리고 깃털 같고 마술 같은 차가움을 느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언덕과 눈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여기 아이들 모두가 언어의 정확한 사용법을 훈련받았지만
어제 조너스가 경험한 햇볕의 따스함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 로이스 로리 ‘기억 전달자’ 중에서
공중파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내보내는 드라마와 영화 속 담배는 모자이크 처리 된다.
술이나 마약, 총기는 보여주지만
혈흔이나 문신, 살인 도구가 되는 칼도 뿌옇게 가려놓는다.
하지만 담배와 칼을 본다고 모든 시청자가 모방 욕구를 느끼지는 않는다.
정작 대중을 위해 가려야 할 건 따로 있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게 꺼려진다. 지나친 욕설 때문이다.
인물의 성격을 강조하려면 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주인공과 조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욕을 내뱉는다.
극중 욕설은 무차별적으로 시청자의 귀에 박힌다.
처음엔 눈을 찌푸리지만 멋진 연기자의 욕설이 폼나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덧 거부감은 사라지고 아기가 말을 배우듯 따라 한다.
소설 속 조너스는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제어되고 통제되는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인류 문명의 기억 전달자로 선택받고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경험하고 느껴야 할 감정과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는다.
사랑이란 말을 없애자 사랑의 의미는 왜곡되고 감정마저 사라졌다는 것도 알게 된다.
카페와 학교와 직장, 거리와 지하철, 인터넷 공간까지 욕설이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생각과 감정을 직설적인 욕으로 대신하면
머잖은 미래, 많은 단어와 문장이 사라지고 사고 능력도 저하될 것이다.
언어는 생각의 도구이자 외투지만 욕설은 감정의 배설물이다.
문명인은 자기 배설물을 내보이는 걸 수치스러워한다.
그런데 대중매체는 쉼 없이 배설물을 흘려보내고
대중은 보고 듣고 따라 말하며 그 속에 빠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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