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뉴욕의 급증하는 아시안 혐오, 그래도 출퇴근 하기로 한 까닭

colorprom 2022. 6. 25. 15:25

욕설과 위협에 움츠린 삶? 난 아내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주말-신순규의 월가에서 온 편지]



뉴욕의 급증하는 아시안 혐오, 그래도 출퇴근 하기로 한 까닭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입력 2022.06.25 03:00
 
 
일러스트=안병현

 

아내 말 들어서 손해 볼 것 없다.

오히려 아내 말만 잘 들으면 득이 된다는 말도 있다.

정말 그럴까?

 

코로나 팬데믹은 나와 아내의 24주년 결혼 기념일인 2020년 3월 9일부터 시작됐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영상회의 프로그램인 ‘줌’과 친해졌고, 대중교통과는 연을 끊게 되었다.

마지막 퇴근을 했던 2020년 3월 6일 후로 지금까지 나는 기차나 지하철을 탄 적이 없다.

오늘까지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일로 맨해튼에 나가야 할 때면 아내가 운전을 하고, 가끔은 우버 택시를 탔다.

 

다시 사무실에 출근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올해 늦여름이나 초가을쯤부터 1주일에 2~3일 정도는 맨해튼 시내에 있는 사무실에 나가야 한다.

거의 17년 동안 그렇게 해왔듯이, 뉴저지에서 통근 기차를 타고 뉴욕 펜스테이션까지 간 후

지하철을 이용해 월가까지 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오랫동안 고대해 왔다.

투자 아이디어 토론을 채팅방과 전화로 하는 건 지긋지긋하다.

하루에 3시간 넘는 출퇴근 시간을 아낀다는 점은 좋았지만,

투자를 하는 팀원들은 언제나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서로의 생각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얼굴 맞대고 식사하며 서로의 삶을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효과적인 팀워크를 키워야 하는데

그 일을 28개월 동안이나 못 하고 있다.

 

아내 생각은 다르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완전 재택근무를 하라고 나를 설득 중이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삼식이’가 되어도 좋으니까

제발 대중교통 타고 어려운 출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내 주장도 일리는 있다.

아시안을 향한 폭력적인 언행이 잦아졌고,

특히 뉴욕시 지하철에서는 증오 범죄 사건으로 희생된 아시안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렇게 걱정할 일 아니라며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상황이 심각하다.

더구나 지난주 일요일은 아시안계 미국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역사적 사건의 40주년이었다.

 

1982년 6월 19일,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씨는

그를 일본 사람으로 오해한 두 명의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결혼식을 앞둔 친씨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미시간주에서 사건 4일 후에

여지없는 인종차별 범죄로 그의 안타까운 27년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당시 미국에는, 특히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었던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간주에는

반일 감정이 커지고 있었다.

일본 자동차 분야의 빠른 성장으로 경쟁력을 잃게 된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에 따른 경제적 불황의 책임을 정치 지도자들은 일본 자동차 분야에 떠넘겼다.

사람들의 감정을 일본인들을 향한 분노로 몰아간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야구 배트로 친씨를 때려 죽인 두 명은

고작 3년의 집행유예와 3780달러(약 487만원)의 벌금에 처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중국계 미국인을 죽일 자격이 3000달러라는 말까지 생겼다.

 

2020년대에 급속도로 커진 아시안 혐오는 4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그때처럼, 많은 이들에게 타격을 입힌 사건의 책임을

아시아 나라에 떠넘긴 지도자가 있지 않나?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100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를 중국 탓으로 떠넘겼다.

‘차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그의 표현이 뉴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져 나가면서

최근에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이 중국인들 탓이라고 믿는 미국인들이 많아졌다.

 

그들 중에는 40년 전 야구 배트를 휘둘렀던 살인자들처럼

증오 범행을 주저하지 않는 이들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무엇이 아내를 두렵게 만드는지도 충분히 안다.

다치게 하지 않더라도 온갖 욕설과 성적 위협을 당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듣고 있으니까.

호신용 페퍼 스프레이를 갖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여섯 살 난 딸에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비겁한 싸움(dirty fighting)’을 가르치고 있다는

친구도 있다.

 

그렇다고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하나?

내 회사는 매주 5일 재택근무를 원하는 직원들의 요청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아시아 혐오 때문에 내 안전을 걱정하는 동료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기한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이유라니, 왠지 불편하다.

 

마치 혐오자에게 굴복하는 것 같다.

또 나처럼 자신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위험을 감당해내는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단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고객들과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리는 것 같아서

완전 재택근무 요청이 망설여진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아내가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는 등의 최후통첩을 내놓는다면

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겠지만, 나는 외부의 위협 때문에 움츠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그런 삶이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친절한 말 한마디나 도움의 손길과 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