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화 잘 내는 법 배워 볼까요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스물여덟 살 작가 이원석이 낸 첫 소설집 ‘까마귀 클럽’을 읽다가 잠시 고민했다.
“분노라는 걸 배워야 하는 건가?”
놀랍게도 소설 속 까마귀 클럽 회원들은 그렇게 믿었다.
정확히는 ‘화 잘 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나름 연습 방법도 체계적이었다.
스터디원(員)이 4명인데 우선 둘씩 짝을 짓고, 분노의 말을 상대에게 쏟아낸다.
하지만 이들은 잠시 스트레스는 풀었어도, 화 잘 내는 법을 터득하진 못했다.
급기야 연습 중 진짜 화가 난 스터디장(長)이 이렇게 외친다.
“세상에 화 하나 제대로 못 내는 등신들 천지삐까리”라고.
책장을 덮고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현실에도 돈 내고 분노하는 법을 연습하는 곳들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이었던 2017년쯤
서울 홍익대 인근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긴 일명 ‘분노방’이 그랬다.
5평 남짓 공간에서 기물을 때려 부수는 ‘체험공간’이다.
약 20분 체험에 적게는 2만원, 많게는 15만원 요금을 내야 했다.
그런데도 매일 모든 시간대 예약이 찰 정도로 인기였다.
취재차 이곳을 찾은 적 있었다.
분노방 직원은 내게 안전모와 장갑, 고글을 착용하게 한 뒤 연장(배척) 하나를 쥐어줬다.
그걸로 방 한가운데 사람 모형 마네킹, 석고상, 유리 탁자, 접시 등을
“20분 동안 마음껏 때려 부숴도 된다”고 했다.
한편에는 사용하던 도구가 질릴 때 바꿔 들도록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장도리 등
각종 파괴 무기들이 놓여있었다.
때려 부술 때 흥이 나라고 메탈 음악까지 배경음으로 깔아주는 세심함도 있었다.
하지만 사물을 때려 부순 지 5분 만에 이 ‘체험 취재’를 후회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네킹을 쇠 연장으로 때렸을 때 느껴지는 둔탁함은
생각보다 더 무거웠고 불쾌했다.
무엇보다 파괴는 체력이 요구되는 행위였다.
후들거리는 팔과 안전복 속 차오르는 땀에 없던 분노가 더 생길 지경이었다.
“이런 걸로 분노가 풀린다고?”
결국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방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분노방은 알고 보니 유래가 꽤 오래된 것이었단 점도 놀라웠다.
국내에선 이미 1990년대 외환 위기 전후 등장했고,
미국에선 금융 위기 무렵인 2008년 텍사스·시카고·뉴욕을 중심으로,
2014년에는 폴란드·러시아·캐나다·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성업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설 속 까마귀 클럽장의 말이 정말 맞았던 것이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내에선 이 분노방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온갖 것에 ‘분노’란 말이 쓰이는 이상 이 방은 언제든 다시 부활할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다음번은 좀 덜 파괴적인 모양새였으면 한다.
속에 분노를 켜켜이 쌓는 것보단 털어내는 게 당연히 좋겠지만,
그걸 꼭 파괴적인 방법으로 연습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이미 그런 방식으로 서로에게 화를 낼 때 무엇이 좋지 않은지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당장 소셜미디어만 들여다봐도 남녀가 서로에게 “분노했다”며 여혐과 남혐 발언을 쏟아낸다.
마치 서로가 까마귀클럽 스터디원인 것처럼, 분노방에 놓인 마네킹인 것처럼.
분노하기보다 화합하고 사랑해야지.
정호승 시인이 평생동안 화두를 잡고 있는 게 바로 <사랑>인데,
뭔 툭하면 이리도 자주 사랑시를 쓰나 싶지만,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우리같은 범인은 절대 흉내조차 못내지.
이 시대에 우리와 함께 하는 성자에 속하는 사람이지.
뭐 어쨌거나, 빠루를 들고 물건들을 때려부수는 윤기자를 상상하니 완전 빵터지네. ㅎㅎ
윤기자가 좋은 표현을 했소. 마네킹을 때릴 때의 감정이 무겁고 불쾌했다고.
인간은 원래 그렇소. 마네킹이 한낱 물건임에도 때리면 희한하게 죄의식이 들지.
그러니, 인간은 들여다보면 감탄스러울만치 윤리적인 면을 갖고 있지.
인간이란 종이 서로 싸워 멸종하지 않은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sf영화나 소설 보면 ai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며 싸우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요.
anyway, 윤기자는 식물 하나 화분에 담아서 키워보세요.
도시인들이 방에다 식물을 키우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인간은 또 농사본능이란 게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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