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그때 위안부 합의는 정말 ‘굴욕’이었나

colorprom 2022. 6. 24. 14:46

[동서남북] 그때 위안부 합의는 정말 ‘굴욕’이었나

 

의미 작지 않았던 日 책임인정, 진영논리에 휘둘리다 물거품
5년간 피해자들 恨만 더 쌓여, 尹 정부 반면교사 삼아야

 

입력 2022.06.24 03:00
 
 
윤미향 의원.

 

다음 주 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한·일 관계 돌파구를 찾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시작된다.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미래 지향’ 의지가 충만해도 현실적인 과거사 벽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강제징용과 함께 과거사 이슈의 한 축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최근 공개된 ‘외교부-윤미향 면담’ 문건

수년간 공들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수십 년간 일본에 요구해온 핵심은

‘사과와 책임 인정, 그에 따른 배상’이었다.

그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의 수용 여부였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협상을 한 당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은 합의 후 피해자들이 반대하면 자신들이 ‘매국노’로 몰릴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합의 전에 10차례 이상 피해자 측과 만나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당시 정의연 대표였던 윤미향 의원은 “나를 (피해자 측) 창구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외교부 문건에 따르면 합의 발표 전날에 협상단은 의원에게

‘아베 총리 직접 사죄·반성 표명’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 출연’ 등 핵심 골자를 미리 알려줬다.

그 무엇으로도 피해자들 한(恨)을 100% 풀 수는 없겠지만,

‘일본 정부 예산 출연+총리 사과’는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의미가 작지 않았다.

의원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상가들은 ‘피해자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원은 우리 측 조치, 즉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해결 노력’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 자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부분을 듣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가 굴욕 합의를 숨겼다”고 했다.

 

이 부분은 따져봐야 한다.

 

소녀상이나 국제사회 비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책임 인정, 배상을 외면하는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납득할 만한 사과·배상을 얻어내면

굳이 국제법적 논란을 일으키며 외국 공관 앞에 소녀상을 둘 필요는 없다.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의미 있는 공간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사과·배상을 받으면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욕할 이유도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만약 일본이 합의를 안 지키고 딴소리하면

그때 다시 소녀상, 국제사회 비판을 동원하면 된다.

이걸 갖고 합의 전체에 ‘굴욕’ 딱지를 붙이는 게 맞을까.

 

책임 인정, 배상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면

의원은 사전 설명을 들었을 때 피해자들과 공유하고 ‘절대 안 된다’고 제동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 등은 “윤미향이 합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합의 발표 후 여론에선 소녀상만 부각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국면이 됐다.

 

한번 꼬인 매듭은 계속 엉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전 정부 공격 수단으로 활용했고,

외교부는 전후 맥락을 뻔히 알면서도 ‘엄청난 흠’이 있었다며 사실상 합의를 파기했다.

 

이 때문에 가해자인 일본이 “한국이 국가 간 합의도 안 지킨다”고 큰소리치는 상황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뒤늦게 “양국 간 공식 합의가 맞는다”고 했다.

 

위안부 합의가 죽도 밥도 아닌 상태가 된 5년 동안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사이 35명이던 생존자 중 24명이 세상을 떠났다.

 

안 그래도 난제인 한·일 문제

국내 정치, 진영 논리, 여론 몰이가 얽히고설키면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

 

윤석열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