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인생은 50부터, 스티븐 앨커

colorprom 2022. 6. 7. 19:23

[터치! 코리아] 인생은 50부터

 

30년 무명 골퍼 스티븐 앨커, 2부투어 오가며 근근이 버텨
시니어투어서 마침내 활짝
포기 안한 그에게 나이는 축복

 

입력 2022.06.04 03:00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싶은 골프 선수가 요즘 화제다.

거의 누구도 이름 들어본 적 없던 벼락 스타의 맹활약에

‘미스터리’ ‘마법’ ‘영화’ ‘신데렐라’ 등등 찬사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 신데렐라, 나이가 좀 많다.

뉴질랜드 출신의 1971년생 스티븐 앨커

만 50세 이상만 출전하는 미 PGA 챔피언스 투어 최강자로 우뚝 섰다.

 

뉴질랜드의 스티븐 앨커가 지난달 30일 미국 미시건주 벤튼 하버의 하버 쇼어스 리조트에서
미국 시니어 골프 투어인 PGA 챔피언스 투어 메이저 대회 키친에이드 시니어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에 입맞추고 있다./AFP 연합뉴스

 

프로 전향 후 30년 가까이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분투해왔다.

주로 미국과 유럽 2부 투어를 전전했고 호주, 캐나다 등 소규모 투어에서도 뛰었다.

2부 투어 우승으로 1부 투어 출전권을 손에 넣기도 했지만 오래 지키지 못했다.

미 PGA 1부 투어 80여 개 대회에 나서 절반 이상 컷 탈락했다.

26세 때 세계 랭킹 120위를 해본 적 있으나 1000등 밖으로 밀려난 날이 많았다.

 

그래도 버텼다.

지난해 7월 생일 직전까지 미국 2부 투어에서 젊은 선수들과 겨뤘다.

그러다 50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챔피언스 투어 한 대회의 월요 예선을 신청했다.

이걸 통과해 본 대회에 나섰는데 공동 7위에 올랐다.

10위 안에 들어 다음 대회 출전권을 확보한 것이다.

 

기적이 시작됐다.

여섯 대회 연속 10위 안에 들어 다음 대회 출전권을 연이어 따냈다.

11월엔 첫 우승이 나왔다.

올해 들어선 아홉 대회 출전해 우승 3번, 준우승 2번을 했다.

 

지난달 30일엔 시니어 PGA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챔피언스 투어 데뷔 1년이 채 안 돼 벌어들인 상금 296만달러는

그가 미국 1·2부 투어에서 평생 받은 상금 231만달러보다 많다.

 

만 50세 이상만 나서는 시니어 투어라 해도 젊은 시절 수퍼스타들이 즐비하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도 있다.

 

50세가 되도록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 선수가

갑자기 스타들을 줄줄이 꺾고 투어의 주인공에 등극했으니

마법 같은 미스터리, 영화 같은 사건이다.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톰 왓슨 등 전설들의 이름 옆에 자기 이름을 새긴 메이저 트로피를

그는 신기한 듯 바라봤다.

50년 동안 뭘 하다 이제 나타났냐고 물으면 “오직 인내, 그야말로 인내뿐”이라고 답한다.

 

그저 굳게 버텨왔다.

크게 한 방을 노리지도 않았고, 막막한 현실에 단념하지도 않았다.

긴 세월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 결정이 옳았는지 수없이 스스로 되물었다.

그저 계속 살아남았다.

골프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그냥 버틴 게 아니라 잘 버텼다.

헛된 꿈 꾸며 멍하니 시간 보내지 않았고,

하루씩 힘을 긁어모아 자신에게 계속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애썼다.

50세를 앞두고는 체력 운동을 늘려 철저히 준비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쾅’ 하고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내 골프의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골프엔 살아온 인생이 드러난다.

더블보기 2개를 하고도 곧바로 버디 2개를 잡아낸다.

최종 라운드를 4타 뒤진 채 출발해도 끝까지 달라붙어 3타 차 역전 우승을 해낸다.

어려운 상황에서 파 세이브가 강점이다.

비가 와서 경기가 중단된 동안 TV 재방송으로 자기 스윙을 보며 문제점을 발견해

경기 재개 후 여섯 홀에서 6타를 줄이기도 했다.

 

동료들은 이 낯선 경쟁자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더라. 약점이 안 보인다”고 한다.

 

수년간 함께해온 캐디는

앨커에겐 언제나 목적이 있고, 날마다 마음속에 목표가 있다”고 했다.

 

앨커는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모든 게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끈질기게 버텨온 그에게 50세란 나이는 축복이다.

그의 흥미진진한 인생이 50세에 시작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