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1]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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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바로크의 거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1598~1680)가 구상한
루브르 궁전의 동측 정면이다.
중앙의 원형 건물에는 고전적인 아치와 거대한 기둥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위풍당당한 로마 제국의 건물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퍼져나간 회랑은
마치 점토를 자유롭게 주물러 빚은 것처럼 탄력 있게 휘어진 곡선으로 이루어져
베르니니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공간을 연출했다.
루브르는 원래 12세기에 요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14세기에 왕궁이 됐다가, 15세기에 병기창 겸 감옥이 됐다가,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왕이 들락날락하는 대로 재건축을 하다가 말다가 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을 개축했고, 여덟 명의 교황으로부터 대를 이어 총애를 받았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 베르니니를 프랑스까지 불러내 루브르의 확장을 맡기려던 건
바로 ‘태양왕’ 루이 14세였다.
당시 베르니니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그가 프랑스로 오는 길목마다 구경꾼이 구름처럼 모여 환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베르니니는 프랑스 왕실을 대놓고 무시했다.
루이 14세가 갓 구입한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을 보고 파리 전체보다 비쌀 거라는 둥,
로마를 한번도 못 본 사람치고는 왕의 취향이 괜찮다는 둥 망언을 해 미움을 샀다.
결국 루이 14세는 베르니니 대신 프랑스 건축가들을 고용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재건축이 완성되기도 전에 베르사유에 더 큰 왕궁을 지어 파리를 떠난 뒤
다시는 루브르로 돌아오지 않았다.
왕이 떠난 왕궁은 대중을 위한 박물관이 됐다.
그제야 루브르는 만인의 사랑과 존중을 받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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