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맨홀 뚜껑에 적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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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길을 걷다 돌로 만든 맨홀 뚜껑을 봤다.
돌은 단단한 반면 잘 깨지는 특성을 가져 맨홀 뚜껑으로는 부적당하기 때문에
쇠가 부족하던 일제강점기 시절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니 그동안 매일 다니면서도 보지 못했던 맨홀 뚜껑이 눈에 들어왔다.
경기도 인천시, 인천직할시, 인천광역시 마크가 붙은 것은 물론
가지각색의 모양과 색깔로 곳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번은 어디서 본 듯한 문양인데 어느 동네 것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검색해보니
서울시가 1947년부터 1996년까지 사용한 휘장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서울시가 사용하는 마크가 새겨진 맨홀도 찾았다.
인천 맨홀을 덮고 있는 서울시 맨홀 뚜껑이 신기해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경남 창원시에는 인천시 마크가 달린 맨홀 뚜껑이 있다는 댓글이 달렸고,
서울 맨홀 뚜껑은 목포에서도 확인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모여 도시를 이루듯 맨홀 뚜껑도 전국을 오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서울, 부산, 목포에서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맨홀 뚜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상하게 인천부 마크가 새겨진 맨홀은 볼 수 없었다.
조선총독부 통신국 문장이 들어간 맨홀도 보이는데
인천에 있던 인천부 맨홀 뚜껑은 모조리 사라져버린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지난주 평소 자주 지나던 길에서 인천부 마크가 들어간 맨홀 뚜껑을 찾아냈다. 얼마나 기쁘던지.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사진을 찍어 두고
혹시 주변에 다른 맨홀 뚜껑이 있나 돌아보며 귀가했다.
다음 날 해당 자치단체에 연락해 현장에 모조품을 설치하고 진품은 박물관에서 보존하는 방안과
현장에 그대로 두면서 건축자산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맨홀 뚜껑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해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역사를 써간다.
세상은 그런 소중한 것들이 있어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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