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장애인 배려 선진국 일본

colorprom 2022. 4. 19. 15:25

[특파원 리포트] 장애인 배려 선진국 일본

 

입력 2022.04.19 03:00
 
 

한국이 일본만큼 경제적으로 잘살게 됐다는 말에 많은 일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한국인끼리 모이면 그래도 일본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단 소리가 나온다.

대표적 사례가 “고령자나 장애인이 살기엔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관련 시위를 보고

그런 주장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본 교통 약자를 위한 시설 정비를 한국보다 수년 먼저 시작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00년

‘고령자·장애자 등의 대중교통 이동 원활화 촉진 관련 법률’이라는

일명 ‘배리어 프리(barrier-free·장벽 없애기)법’을 도입했다.

교통 약자 이동에 장벽이 되는 단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철도 역사 내 엘리베이터·슬로프를 설치했다.

법률 개정을 통해 병원·백화점·호텔 등으로 대상을 넓히기도 했다.

계단 없는 저상 버스 도입도 본격화됐다.

그 결과 2017년 도쿄 등 일본 전국 지하철 운영사 10곳의 역사 625곳 중 624곳에

엘리베이터·슬로프 설치가 완료됐다.

 

한국 코레일에 해당하는 JR과 각종 민간 철도 회사는

2020년 기준 하루 이용객 3000명 이상인 역사 95%의 관련 시설 정비를 마쳤다.

다음 정비 대상은 이용객 2000명 이상 역사다.

저상 버스 전국 도입률은 2000년 0%에서 2020년 63.8%로 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면서 더 크게 다가오는 건 물리적 설비나 제도보단 사람들의 태도다.

역무원과 버스 기사가 나와 휠체어 승객을 탑승·하차시키는 시간을 당연하게 감내하고,

차량·엘리베이터 공간을 유모차에도 양보하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이다.

일본도 배리어 프리 설비가 100% 완전하지 않지만,

장애인들이 출근 시간 대규모 시위를 벌이거나

유력 정치인이 그들의 시위 방식을 비판하며 반목하는 일은 없다.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개선된 제도,

교통 약자 이동을 배려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20년 개정 ‘배리어 프리법’엔 아예 ‘마음의 배리어 프리’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반대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마음의 장벽을 허물자는 뜻이다.

보완을 거듭해도 생기는 제도의 틈을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들 사이의 유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기즈나(絆)’라는 결론이다.

 

남다른 추진력을 자랑하는 한국이라면

경제 분야에서 그랬듯, 장애인 이동 시설도 금세 일본을 따라잡을 것 같다.

하지만 설치율 몇 퍼센트 같은 물리적 요소보다 중요한 건 우리 마음의 장벽일지 모른다.

새 정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앙금과 장벽이 남지 않도록 이번 시위로 촉발된

여러 갈등을 잘 봉합하고 제도 정비에 나서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