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
마음을 캐는 사람.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이야기해 ‘디지털 점술가’로도 불린다.
현재 ㈜바이브컴퍼니(구 다음소프트) 부사장으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모아
‘오피니언 마이닝 워킹그룹(OMG)’을 17년째 이끌고 있다.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상상하지 말라》 《그냥 하지 말라》 등을 썼다.
한 해 30여 종. 범람하는 트렌드 서적 속에서 압박감과 현기증을 느낀 적이 있다.
트렌드 서적은 불안을 판다.
엇비슷한 개념을 신조어로 포장해 새로운 트렌드인 것처럼 시장에 내놓으며
독자들에게 위기감을 안긴다.
‘당신 이 말 알아요?’ ‘신조어를 모르면 뒤처지는 겁니다’라면서
끊임없이 ‘팔로 미(따라오세요!)’를 부추긴다.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은 다르다.
따라가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의심하라고 경고한다.
그의 근작 두 권만 봐도 차별점이 읽힌다.
《상상하지 말라》(2015) 《그냥 하지 말라》(2021).
마케팅 분야로 분류돼 있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우리 인생의 궁극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라는 것을.
숨 막히는 속도전에서 개별자로서 우뚝 서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언인가를 알려주는
인생 운영 지침서라는 것을.
송길영 부사장은 빅데이터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읽어낸다.
그의 논리는 명쾌하되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통쾌하되 절대 명제를 신봉하지 않는다.
투명한 균형감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반보 앞서 미래를 통찰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운명론이거나 정해진 결과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선호하고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동화에 대한 열망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제어하고 싶은 욕망의 결과이다.
비대면이 아니라 선택적 대면이다.”
긴 꽁지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인 송길영 부사장을
한남동에 있는 바이브컴퍼니에서 만났다.
그는 개념과 개념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냈는데,
어휘 선택은 정확했고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었다.
마케팅 흐름과 대학의 역할, 직업의 미래와 미디어의 향방 등에 대해 정돈된 사고를 펼쳐 보였다.
질문을 넣으면 해답을 뱉어내는, 자판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숫자를 볼 때, 당신은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어떻게 가능했죠?
“삶의 지향점입니다.
빅데이터를 제 삶의 도구로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먼저 배운 건 도구나 수단이었어요.
주변의 훌륭한 분들을 뵙고 교류하면서 그게 다가 아니라 더 큰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거기에 따르는 열패감이 저를 계속 공부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배움이 짧은 것을 인식할 만큼의 지능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움이 짧다는 전제에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만.
“짧죠. 왜냐하면 제가 배운 학문은 다 수단의 학문이었어요.
물론 이학은 기본적으로 원리나 이치에 대해 탐구하지만,
제가 배운 컴퓨터과학은 이학이면서도 사회 문제를 풀거든요.
그러다 보니 도구화할 우려가 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를 고민했는데, 알고 보니 그 문제를 없애는 게 답이었습니다.
푸는 게 아니라 구조에 대한 통찰이 필요했어요.
그러려면 전체의 연역적 추론을 기반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했는데,
도구화하는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어요.
그걸 알게 되면서 제가 해온 일들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이후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전체의 얼개를 보고 나니
그가 현재 속한 입장이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에 대한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미래가 아니라 과거가 보였다고요?
“과거가 현재고요, 현재가 미래입니다.
그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의 이런 삶이 있는 것이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그렇게 될 거예요.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거예요. 명백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해온 결정이 지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선호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를, 브랜드를 알리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합니까.
“알리는 게 아니에요. 알려지는 거지.
그러려면 미래의 그 자리에 가 있어야 해요.
트렌드를 좇으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따라가면서 계속 조갈이 날 수밖에 없어요.
가장 무서운 건 본인의 삶의 궤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욜로족으로 살다가 왜 갑자기 파이어족이 됐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건 전부 개인이 주체적 삶을 살고 싶은 시도였을 뿐이에요.”
사람들은 보통 행동력을 우위에 둡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행하라고들 하죠.
하지만 당신은 ‘생각을 먼저 하고(think first)’ ‘실행하라(just do it)’고 해요.
“당위를 말한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급함으로 당위를 지우곤 합니다.
그 조급함은 ‘이걸 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희망이에요.
좋은 건 이미 누군가 하고 있어요. 그런 일을 좇는 건 경쟁 트랙으로 올라가는 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결정된, 제한된 성취의 프레임이죠.
그걸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데, 계속하라는 게 옳을까요?
이걸 먼저 생각해보라는 거죠.”
그렇다면 세상을 읽는 것과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합니까.
“철학자인 리처드 로티 박사는
본인을 설명할 수 있는 최종적 언어(final vocabulary)로 신념을 표현해보라고 했어요.
재밌는 건 그것도 의심하라고 합니다.
신념도 깨달음의 크기나 세상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는 신념을 세우고 의심하는 사람을 아이러니스트(ironist)라고 불렀어요.
내가 성장하면서 인지가 넓어지고, 사회 얼개가 바뀌면서 신념이 변화할 수도 있잖아요.
한마디로 꾸준히 생각하라는 거죠. 안주하지도 말고 스스로를 믿지도 말고.”
현재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의 줄기는 뭔가요.
“사람들이 상호 간 이해하고 합의 과정에 대해 알고 나면 서로를 존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소통이군요.
“그런 진부한 어휘로 설명하는 순간 뜻이 퇴색돼요.
이미 오염된 언어를 쓰지 않고 기존 관행을 넘어서려 합니다.
남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제가 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저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저의 가치이자 자존입니다.”
꽁지머리, 검은 재킷, 뿔테 안경,
‘마인드 마이닝’(mind mining, 마음을 캐는 광부)이라는 수식어도
그런 차원에서 설정한 캐릭터인지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달라 보이는 건 중요합니다.
달라야 인식되거든요. 그게 상대의 에너지를 줄여주는 측면도 있어요.
제 이름을 외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양을 통해 직관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줄여주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캐릭터와 성정, 표현과 일치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 스타일을 고수할 건가요?
“그건 모르죠. 그런 인식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바꾸겠죠.
어떻든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지는 않을 거예요.”
사람들에겐 모순되는 두 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소위 ‘국룰’(‘국민의 룰’의 줄임말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암묵적 규칙을 뜻함)을 벗어나면
불안하면서도 남과 달라 보이고 싶어 하죠.
“이건 제가 고민했던 부분이라 설명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전자는 효율에, 후자는 자존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목표가 좀 달라요.
국룰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거예요.
맹목적으로 추구하거나 나의 목표가 남과 같아 보이고 싶다면 그건 숨는 것이죠.”
앞서 오염된 언어가 아닌 자기만의 언어를 쓴다고 했는데 ‘욕망’이란 뭔가요.
“욕망이란 내가 소멸한 후에도 나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본능에서 비롯됩니다.
나의 자아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에게 존중받고 영향력을 가지길 바라는
무한한 욕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죠.
매슬로의 욕구단계론을 말하지 않아도 인정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거예요.
운명이자 본능 같은 것이죠.
억지로 누르기보다 순방향으로 너르게 펼치고, 상호 간에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게 우리 사회 규칙이자 하나의 상식이 됩니다.
그런 부분을 적확하게 이해하고 잘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네트워크 시대, 1인 미디어 시대에 통용되는 욕망의 구조는 소위 ‘관종’들에게 유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건 펼치는 층위의 문제이고 결국은 같다고 봅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 안에 다 들어있어요.
누구나 다 잘 살고 싶고, 나와 연결된 흔적을 남기고 싶고,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잖아요.
그 범주가 넓어졌을 뿐이에요.
과거엔 동네에서 ‘이 친구 노래 참 잘해’였다면
지금은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나갈 수 있는 수준 아니야?’가 가능해졌을 뿐이에요.”
나의 성장과정을 어필하라고 했지요. 그것도 일찍 시작해서 오랫동안.
나를 드러내길 꺼리는 성정의 사람들의 생존법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건 선택이냐, 주저함이냐의 문제로 나눠볼 수 있어요.
첫째, 선택의 문제입니다. 유명가수가 되고 싶은데 노래를 발표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는 거예요.
‘하느님,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더니
‘복권이라도 좀 사거라.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잖니’라는 응답을 받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실행이 전제가 돼야 해요.
둘째, 주저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하거나 내가 받을 평판이 두렵거나.
전자는 완벽주의 성향이어서 스스로 성에 차지 않는 경우이고,
후자는 네거티브에 민감한 사람들인 경우죠.”
반면 가짜 실력자가 넘쳐납니다. 과대 포장에 속는 거죠.
“대중이 영민해졌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이라고 하죠.
집합적인 인식과 인정을 믿어요. 가짜 실력자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건데, 눈빛이 아이 같군요!“그런가요(웃음)? 얼마 전 60대 뮤지션을 만났는데 그분도 완전 아이 같더군요.
호기심이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아이이고, 호기심을 잃으면 어린아이도 노인이에요.
아마 저도 호기심이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제가 발견하는 분야에 대해.”
재밌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럼요. 엄청 재밌어요.
재밌는 일만 해요. 이 일을 제가 만들었잖아요. 존재하지 않던 일이에요.”
존재하지 않던 일이라.
“비정형의 소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걸 기반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이해한 곳에서 인사이트를 뽑아 조직과 기관에 필요한 일을 해줍니다.
이런 건 존재하지 않던 일이에요.”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별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흩어진 수많은 별 중 유의미한 별들을 선별하고 이어서 별자리를 만드는.
“출발점은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가입니다.
목표에 따라 데이터가 바뀝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의미를 부여하는 이의 이해 수준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깊게 고민하고 슬기롭게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스킬이 필요해요.”
마케터의 구루로 불리는 세스 고딘은 최근작 《이상한 놈들이 온다(We Are All Weird)》에서
“대중을 버려라, 변종이 온다”고 했습니다.
대중과 다수, 집단의 종말을 논하면서 서브컬처가 주류를 이끈다고도 했고요.
이런 시류는 변수인가요, 상수인가요.
“상수입니다. 인간은 똑똑해지면 본인이 남들과 다르다는 자각을 합니다.
그래서 대중이 사라지고 있어요.
개별자로서 고유함에 대해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각자 존귀하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 통념상, 편의상 종종 대상을 묶어내곤 해요.
세대론도 그렇고, 마케팅 분야에서 묶어서 활용한 CRM(고객관계관리)도 그 경우죠.
서초구에 사는 연소득 6000만 원의 30대라면 이런 걸 사겠지, 라는 식인데 말도 안 돼요.
이제는 아마존도 대중을 안 봅니다. 대신 고객 개인을 봅니다.
각 고객이 물건 몇 개 사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수요나 취향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것과 기존 대중을 연결하지 않아요.
대중을 보는 건 공급이 제한적이고 삶의 기준이 낮을 때 얘기입니다.
지금은 달라졌어요.”
변종이 더 이상 변종이 아니군요.
“그렇죠. 자존을 가진 개인의 각성이에요.”
결국 개인의 시대가 왔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문명화라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어릴 때 애국조회가 가장 싫었어요.
1000명을 다 모아놓고 옆으로 나란히 열과 행을 맞춰 서서 조용히 있으라고 해요.
학생을 통제 대상으로 본 겁니다.
개별자로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한 명이 떠들면 다 같이 연좌제로 단체기합을 받습니다.
3학년 2반 27번 식으로 이름이 없어요. 존중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자존을 잃어요.
규칙과 규율에 의해 타율과 통제 대상이 되는 거예요.
그런 삶에서는 자꾸 숨게 됩니다. 위로 오르면 왕따 당하고, 아래로 내려가면 배제되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AI가 가운데를 학습하기 때문에 중간에 있으면 죽어요.”
가운데는 살아남지 못한다?
“독자적인 걸 보여줘야죠. 점점 개별자로서 존재감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과거엔 개별자로서 따로따로 대접해주는 게 힘들었어요.
비스포크로 각자의 취향을 배려하려면 비용이 들었어요.
귀족과 로열패밀리만 가능한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AI와 스마트팩토리가 구현해주니 누구나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게 됐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류가 선해지고 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개별자의 지위를 존중받고, 각자의 취향을 인정받는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불가피하게 투명 사회가 된 측면도 그렇고요.
“제 책 《그냥 하지 말라》에서 그런 부분을 언급했는데, 욕을 좀 먹었습니다(웃음).
과정이 투명하게 다 보이기 때문에 도망갈 수 없다, 착해져야 한다는 맥락이
성선설로 비치기도 하고, 상대방의 삶의 방식을 강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제가 말한 건 직업적인 부분이었어요.”
평판사회에서는 친절함이 경쟁력이니까요.
얼마 전에는 택시기사가 별점 다섯 개를 부탁한다며 사탕을 주더군요.
“바로 그런 예입니다. 절차적 친절함이죠.”
진심이든 아니든 친절함을 연습하다 보면 결국 태도로 굳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