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김규나] [153] 청와대 터의 운명

colorprom 2022. 3. 16. 14:25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53] 청와대 터의 운명

 

입력 2022.03.16 03:00
 
푸시킨 ‘스페이드의 여왕’

 

게르만은 미끄러져 들어온 하얀 여인이 죽은 백작 부인임을 알아보았다.

“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네 청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받아서 왔어. 3, 7, 1을 차례로 걸면 이길 거야.

하루에 카드 한 장 이상은 걸지 않아야 하고 이후에는 일생 동안 도박을 해선 안 돼.

또 네가 내 양녀 리자베타와 결혼한다면 날 죽게 만든 걸 용서해주겠어.”

 

- 푸시킨 ‘스페이드의 여왕’ 중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집무실과 관사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은 대규모 시위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또한 경호나 비서진 실무 공간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현 정부도 실행하지 못한 공약이었다.

 

게르만은 사교계의 늙은 백작 부인이 젊은 시절,

도박에서 연달아 세 판을 이겨 엄청난 돈을 딴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치밀한 계획 끝에 노부인 방에 숨어든다.

하지만 늦은 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 도박의 비밀을 말하라며 총을 들고 협박하자

놀란 노부인은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직접 살인한 건 아니었지만 꺼림칙했던 게르만 앞에

죽은 백작 부인이 환영(幻影)으로 나타나 돈 따는 비결을 알려준다.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이틀 연속 큰돈을 딴다.

그러나 셋째 날, 돈과 인생, 모든 것을 잃는다.

 

부인의 지시대로 분명 1, 즉 에이스를 냈는데 테이블에 던져진 카드는 스페이드 퀸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저지른 실수였을까, 백작 부인의 저주였을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시를 남긴

푸시킨의 소설 속 주인공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죽은 자의 말을 믿고 운명을 걸었다.

 

청와대 터가 험해서

국가 분란과 대통령들의 불운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많다.

현 정권도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해 옮겨야 하는데”라고 브리핑을 한 적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을 청산하겠다며 이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당선인의 공약이

이번엔 실현될까?

현직을 포함,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 불행이 풍수 때문인지 아닌지

비교,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