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치과는 무섭지만…

colorprom 2022. 3. 8. 16:53

[일사일언] 치과는 무섭지만…

 

황수아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입력 2022.03.07 03:00
 

불혹이 되어서도 여전히 치과가 무섭다.

공사 현장에서나 들릴 듯한 드릴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충치를 갈아내다 한번씩 번개 치듯 꽂히는 통증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치과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이따금씩 물을 빨아들이는 석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더 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감을 긴장시키는 그 공포는

최악 상황마저 상상하게 한다.

 

어릴 때부터 치아가 약하고 단것을 좋아해 충치를 달고 살았다.

치과 공포증마저 있으니 설상가상이다.

충치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치료의 공포를 직면하지 못해 몇 달이고 참고 참다가,

도저히 아파 못 참을 만큼 충치가 심해져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미루고 미루던 치과에 간다.

치위생사는 치료 도구를 가지런히 배열해놓고 “입을 크게 벌리세요”라고 말한다.

내 나름대로 입을 크게 벌렸는데도 “더 크게 벌리세요”란 잔소리를 듣는다.

턱관절이 아플 만큼 입을 크게 벌려야 가장 끝 어금니를 보여줄 수 있다.

 

의사는 어금니 옆으로 마취 주사를 놓는다.

마취된 잇몸은 곧 얼얼해지고

어금니 주변으로 마취약이 차오르면서 입술 감각까지 둔해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보여줄 일이 없던 어금니가

의사 손에서 드르륵 갈려나가며 치료된다.

공포를 직면하니 엉망진창으로 속 썩이던 것 하나가 어찌 됐건 해결된다.

 

어금니 하나를 내보이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 치료해야 할 마음의 통증이 있다면?

그것을 내보이기는 얼마나 힘이 들까.

마음은 입 벌려 보여줄 수 없으니,

다만 내 입에서 나오는 정제된 말로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

입을 더 크게 벌리라는 잔소리를 해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썩어 손쓸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에 마음의 우울을 마취하고 갈아낸다면

사는 게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치료의 공포를 직면하면 어찌 됐건 치료가 된다.

마음 아픈 것을 참고 어금니 꽉 물고 산다면

훗날 그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황수아/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