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윤평중] 중국, 그 영원한 질곡(桎梏)

colorprom 2022. 2. 11. 21:54

[윤평중 칼럼] 중국, 그 영원한 질곡(桎梏)

 

일본에 과시하는 결기 10분의 1만이라도 중국에 보일 수 있어야
자유·인권·문화력의 한국, 전체주의 中이 못 따라와
스스로 존중하는 나라가 남에게 존중받는다

 

입력 2022.02.11 00:00
 

베이징 동계올림픽 편파 판정이 거대한 반작용을 불러오고 있다. 국제 스포츠 대회엔 주최국 텃세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번처럼 올림픽 정신을 위협하는 사례는 드물다. 중화(中華)의 영광을 위해 공정 경쟁의 근본 규범을 무너트린 ‘대국(大國)’의 막무가내 행태와 이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의 ‘애국심’에 세계가 경악했다. 스포츠 민족주의로 중화 제국을 과시해 시진핑 주석의 영구 집권을 굳히려는 무리수가 중국몽의 실체를 폭로한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에 이어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이 최강 패권국이 될 때 한반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다.

구한말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는 조선의 상왕(上王)으로 행세했다. 총영사급 20대 청년이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통상대표지만 실질적 조선 총독)로서 고종을 윽박질렀다. 고종이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자 위안스카이는 고종을 폐위시키려 했다. 조선이 1887년 미국에 전권공사를 파견할 때 위안스카이는 황당한 조건을 강요한다. ‘조선 공사는 청국 공사의 안내로 주재국에 신임장을 제정하며, 청국 공사보다 낮은 자리에 앉고, 청국 공사와 중요 사안을 협의하고 지시를 따른다’는 ‘영약삼단(另約三端·세 가지 이면 약속)’이 그것이다.

한국은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결의로 선진국으로 분류된 경제 대국이자 문화 강국이다. 위안스카이가 ‘조선대국론(朝鮮大局論)’에서 비꼰 ‘자주 불능의 약소국 조선’과는 전혀 다른 나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국 국민들의 피와 땀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 지도층 뼛속 깊이 각인된 중국에 대한 소국 의식과 변방(邊方) 의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끄는 동양 문명이 서양 문명보다 앞섰으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였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베이징대학 연설이 단적인 증거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같은 대국’으로 칭송하면서 ‘작은 나라 한국이 중국몽과 함께할 것’이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대한민국 국격을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권이 중국에 약속한 ‘3불’(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 미사일 방어체제(MD) 편입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비추진)은 오늘의 영약삼단이다. 3불 약속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도 해제하지 못한 데다 대한민국 안보 주권을 포기한 외교 참사였다. 문 정권 초대 주중 대사 노영민이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쓴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이 중국 천자에게 바치는 제후국(번방·蕃邦)의 충성 맹세였다는 사실(史實)이 충격적이다. 명나라 멸망 수백 년 후에도 만동묘(萬東廟) 제사로 명을 기리던 조선 성리학자들의 중화주의 중독을 빼닮았다.

 

올림픽 편파 판정이 부른 반중(反中) 민심에 편승한 한국 정치인들의 과잉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경제를 빌미로 줄곧 친중 노선을 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영해 불법 침범 중국 민간 어선 격침’ 운운은 생뚱맞은 데다 국제법과도 충돌하는 극언에 불과하다. 내연(內燃)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반중(反中) 정서에 기름을 끼얹는 포퓰리즘적 발언은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대(對)중국 2000년 종속 역사의 질곡을 끊고 우뚝 서는 일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 이익 관계는 최대한 살리되 내정(內政) 간섭과 주권 침탈엔 단호히 맞서야 한다. ‘베이징올림픽을 비판하는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 정서를 선동하는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는 주한 중국 대사관의 적반하장을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우리가 일본에 과시하는 결기의 10분의 1이라도 중국에 보일 수 있어야 한국은 진정한 주권국가다.

한국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 위에 일본 및 자유세계와 연대하고 중국과도 선린(善隣)해야 한다. 중국은 반만년 역사의 패권국(Hegemon)이지만 한국은 중국이 달성 불가능한 보편사(Universal History)의 성취를 이룬 매력 국가다. 서유럽 전체보다 큰 중국의 근육 자랑이 따라올 수 없는 자유와 인권, 풍요와 문화력(文化力)의 앙상블이 만든 선진국이 대한민국이다. 현대 한국인은 전체주의 국가 중국 앞에 당당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나라만이 남에게 존중받는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