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위협 알고도 외면하는 나라
입력 2021.08.09 03:00
지난달 27일 미(美) 연방의회 상·하원에서
‘사이버 안보’를 주제로 한 청문회 네 건이 한꺼번에 열렸다.
해킹 범죄에 대한 정부 대처, 수사 기법 강화, 예산 증액 등의 주제가 총망라됐다.
몇 개월 전 중·러 해킹 집단의 공격으로 미국의 주요 인프라 시설이 잇따라 뚫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궁지에 몰렸었다.
북한 해커 이미지
이날 상원 법사위에 출석한 FBI(연방수사국), SS(비밀경호국) 관계자들은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에 대해
“즉시 신고가 이뤄져야 추적 수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랜섬웨어는
컴퓨터망을 마비시킨 뒤 데이터 복구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유형의 해킹이다.
지난 5월 랜섬웨어 공격으로 미 최대 송유관 업체가 6일간 가동을 중단했다.
곳곳에서 ‘휘발유 사재기’가 벌어졌고, 유가는 7년 만에 최고로 뛰어올랐다.
수사 기관 당국자들은
“랜섬웨어 공격을 받은 기업이 몸값을 내지 못하게 강제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신속한 경영 재개를 위해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해커들에게 몰래 돈을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면 수사기관은 해커들을 쫓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몸값 지불 금지화’를 거론하던 일부 민주·공화당 의원이 전문가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날 하원 정부 감시·개혁위 소속 양당 의원들은
미국 내 전력 시설이 해킹당했을 때 정부 기관 간 신속한 협의가 필수라며
관련 규정을 점검했다.
상원 국토안보위는 사이버 공격과 관련한 예산 증액, 조직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한 달간 미 의회가 사이버 공격을 주제로 개최한 청문회는 40건이 넘는다.
예산 편성, 이민 정책 등 온갖 이슈마다 충돌하고 물어뜯는 곳이 미 의회다.
그러나 시급한 안보 문제에선 이견(異見)의 틈이 보이지 않았다.
올해 민주·공화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발의해 통과된 관련 법안도 60개 가까이 된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자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는 ‘최우선 순위’(top priority)로 생각하는
미 정치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 상황은 미국보다 심각하다.
중국·북한 해커들이 우리 군(軍) 내부망, 무기·군사 시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기름이 며칠 부족하더라도 버틸 순 있다.
그러나 군사 핵심 안보가 공격 대상이 될 경우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미 올 상반기 원자력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 등 우리 안보 시설들이
북한 해킹 공격에 줄줄이 노출됐다.
어떤 민감한 정보가 북한에 새나갔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데도 국회·정부에서 향후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국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사이버 공격이 매일 일어나는데,
마치 이런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무능력, 임무 방기를 넘어선 ‘의도적 뭉개기’ 아닌가.
언제까지 안보 자해(自害), 배임이란 비판을 자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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