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알렉세이 나발니

colorprom 2021. 5. 1. 14:34

[기자의 시각] 벌거벗고도 모르는 임금님

 

이옥진 기자

 

입력 2021.05.01 03:00 | 수정 2021.05.01 03:00

 

29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바부시킨스키 지방 법원 재판에 화상으로 참석한

알렉세이 나발니의 모습.

그는 “가장 최근에 잰 몸무게가 72kg로, 중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감 전인 지난 1월 몸무게가 94kg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넉 달간 체중이 22kg이나 빠진 것이다. /AP통신 연합뉴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일거수일투족은 각국의 주요 뉴스로 다뤄진다.

그가 ‘스트롱맨 중의 스트롱맨’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인 나발니

2011년 총선 후 선거 부정과 푸틴의 3기 집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끌면서 유명해졌는데,

특히 지난해 8월 독극물 테러를 당한 뒤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됐다.

나발니는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교도소 중 한 곳에 수감돼 있다.

최근 나발니의 측근들은 기습 체포됐고, 그의 지역 사무소 네트워크는 강제로 해체됐다.

그의 석방 촉구 시위가 열릴 때마다 수백~수천명의 시위자가 연행됐다.

 

이렇게 전방위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나발니

교도소 측이 자신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막는다는 이유로 24일간 단식 투쟁도 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가 되고서 단식을 멈췄다.

 

29일 단식 투쟁 뒤 처음으로 그의 모습이 공개됐다.

화상으로 재판에 참석한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그의 발언은 어김없이 세계에 타전됐는데,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재판장님, 당신의 왕은 벌거벗었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계속해서 퇴보하고 있고,

벌거벗은 왕은 나라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영원히 군림하길 원한다고 했다.

그는 또 판검사들을 ‘부역자’라고 부르며

“당신과 당신의 왕은 러시아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실행 중이며

러시아 국민들은 노예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발니의 말은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무 유명한 이 동화의 내용은 이렇다.

 

‘무능하고 사치스러운 황제가 알몸으로 가두 행진을 하는데도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사기꾼 재봉사가

자리에 맞지 않거나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직물로 옷을 만들었다

고 했기 때문이다.

아첨꾼들이 옷을 칭찬하는 가운데, 한 아이가 외친다. “황제가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

 

나발니푸틴을 ‘벌거벗은 임금’에,

푸틴 편에 선 기득권을 ‘침묵하는 사람들’에,

자신을 ‘아이’에 투영한 것 같다.

 

그런데 안데르센 동화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벌거벗은 임금은 아이의 말을 듣고 움찔한다. 아이 말이 맞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한다. ‘행진은 계속돼야 해.’

그는 더욱 당당한 자세로 행진하고, 그의 신하도 허공에다 옷자락을 추켜드는 시늉을 한다.’

 

현실에서 푸틴만이 이런 비판을 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능한 데다 권력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국민을 기만하는 지도자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현실 속 벌거벗은 임금의 말로는 동화와 달랐으면 좋겠다.

아이가 진실을 외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행진을 멈추고 임금과 아첨꾼들을 혼내줄 수 있을까.

이 편이 외려 너무 동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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