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5] 슬퍼하지 마세요
“Don’t be sad”
황석희 영화 번역가
입력 2021.04.24 03:00 | 수정 2021.04.24 03:00
고등학교 교사인 스티븐스는 1박 일정으로 연극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극반 학생들을 차에 태우고 먼 길을 나선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스티븐스는 어딘가 멍한 표정이다.
이따금씩 웃음을 짓긴 하지만 얼핏 보이는 표정 속에 슬픔이 묻어 있다.
얼마 전 어머니를 잃은 까닭이다.
슬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스티븐스는
그저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고 때때로 한숨을 쉴 뿐이다.
영화 ‘미스 스티븐스(Miss Stevens∙2016)’의 한 장면이다.
대회 장소로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차 타이어가 터진다.
천신만고 끝에 카센터를 찾아 차를 맡기자 수리공이 타박을 한다.
“스페어 타이어로 너무 오래 타지 마세요.(Drive too long on the spare.)”
급히 태연한 척으로 슬픔을 틀어막고 지내는 스티븐스의 상황을 빗대기라도 한 듯,
그녀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만 같다.
대충 틀어막은 슬픔은 터지기 마련이다.
동행한 학생 중 불안장애가 있는 빌리(티모테 샬라메 분)는
스티븐스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넌지시 비친다.
자신보다 더 깊숙이 슬픔과 불안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빌리의 말에
스티븐스의 태연함이 자꾸만 벗겨진다.
스티븐스가 슬픔에 빠져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파악한 빌리는
스티븐스의 침대에 올라가 아이처럼 뛰며 외친다.
“슬퍼하지 마세요!(Don’t be sad!)”
스티븐스가 침대로 뛰어올라와 말려도, 난 슬픈 게 아니라고 말해도
빌리는 멈추지 않고 몇 번이고 외친다.
“슬퍼하지 마세요!(Don’t be sad!)”
스티븐스는 기가 막힌 듯 쳐다보다가 웃어버린다.
그러곤 같이 침대에서 아이들처럼 뛰기 시작한다.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행동이다.(The only cure for grief is action.)”
조지 헨리 루이스의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슬픔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행동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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