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5] 밤새 조금 자랄 거예요
She’ll grow a little overnight.
황석희 영화 번역가
입력 2021.02.06 03:00
영화 '툴리'(2018)에서, 세 아이를 키우느라 녹초가 된 엄마 '마를로'(샬리즈 시어런)는 어딘가 좀 독특한 보모 '툴리'(매켄지 데이비스)를 만난다.
두 아이 엄마인 마를로는 만삭의 몸으로 아이들까지 챙기느라 넋이 나가 있다. 곧 셋째가 나오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게 뻔한 일. 하지만 마를로는 야간 보모 비용을 내주겠다는 오빠의 제의도 거절하고 혼자서 세 아이 키우기를 강행한다.
결과는 쉽게 예상하다시피 마를로의 완패. 마를로는 오빠 말대로 야간 보모를 고용한다. 보모 이름은 ‘툴리’,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저는 당신을 돌봐주러 왔어요(I’m here to take care of you).” 아기를 위해 부른 보모가 의외의 말을 한다.
생각보다 젊고 독특한 보모지만 툴리의 활약으로 마를로는 점점 일상을 되찾는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해 공들여 요리하며, 일상에 치여 한계까지 내몰렸던 자신을 회복한다.
툴리는 셋째를 맡기고 자러 들어가는 마를로를 잡아 세우고 아기에게 굿나이트 키스를 해주라며 이렇게 말한다. “내일 아침이면 달라져 있을 테니까요. 밤새 조금 자랄 거예요. 우리도 그렇고요(She’ll be different in the morning. She’ll grow a little overnight. So will we).”
아기는 말 그대로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아이 모습만 봐서 그런지 우리는 우리도 내일이면 조금이나마 더 자란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마를로도 마찬가지.
산후 우울증의 극단적 예를 극화한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툴리라는 초현실적 존재를 통해 육아에 매몰된 엄마들의 현실을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게 그려낸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성장통을 감내하고 있는 엄마들의 현실을.
“우린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 범벅이에요(We might look like we’re all better but if you look close, we’re covered in conce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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