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문파타파] 처칠, 김구, 윤석열처럼… “어흥!” 하는 공직자가 필요하다
[아무튼, 주말] 소설 ‘영원한 유산’과 정은경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
입력 2021.01.09 03:00
일러스트=안병현
“작전가로서의 처칠은 정말이지 형편없었다네!
정말이지 처칠 때문에 영국군은 여러 번 궤멸당했고....
꼴 사나운 모습을 만방에 드러내고 말았어.”
소설가 심윤경이 쓴 ‘영원한 유산'의 주인공인 호주 외교관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 사실 장수로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고,
그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처칠이 승리의 상징으로 각인된 이유는 뭘까?
그 외교관은 말한다.
“사실상 그가 할 줄 알았던 거의 유일한 것은 이것뿐이었네.
바로, ‘어흥!’이라고 하는 것이지.”
무슨 말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외교관은 백범 김구 선생을 예로 든다.
선생은 일본에 타격을 줄 군사력은 물론이고 외교적 교섭력도 없었지만,
처칠처럼 ‘어흥’이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조선 민중이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처칠이나 김구가 너무 오래전 인물이라 현실감이 없다면,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자.
2019년 7월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은
조국 당시 법무장관 후보자의 비리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정권의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정권 측은 윤 총장의 장모와 아내 등 가족을 괴롭혔으며,
그와 함께 조국을 수사했던 검사를 죄다 좌천시켜 버린다.
웬만한 독재 정권이라면 이 정도 하고 말았겠지만,
문재인 정권의 집요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은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권언 유착으로 엮으려 했고,
순전히 모욕을 가할 목적으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권을 발동했다.
윤석열이 계속 버티자 그들은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명령을 내렸고,
얼마 전에는 자기들끼리 징계 위원회를 구성해 정직 2개월 징계를 먹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윤 총장은 지난 1년여 동안
대통령을 등에 업은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을 뿐,
현 정권에 이렇다 할 반격을 가하지 못했다.
다시금 ‘영원한 유산'을 인용한다.
“요컨대 그(김구)는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목숨을 부지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네.
그러나 그의 살아남음이
실로 한국 민족이 굴하지 않는 기백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지 않았는가?
그가 죽었거나 변절했다면 조선 민중은 무엇을 표상으로 삼아 자부심을 느꼈겠는가?
그는 처칠과 마찬가지로 ‘어흥’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일방적 폭력을 당하던 1년여 동안 윤 총장은 사표를 던지지 않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수십 번 사표를 던졌겠지만, 윤 총장은 그 굴욕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국감에 끌려나가 곧 장관이 될 박범계에게 “똑바로 앉으라”는 말을 듣고,
김남국 같은 이한테는 “공부 하나도 안 해왔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윤 총장은 참고 또 참았다.
왜?
자신이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인내는 현 정권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 줬다.
조선 사람들이 김구를 보면서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진 것처럼,
지금 국민은 윤석열을 보면서 언젠가는 정의가 구현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대선 출마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윤석열이
현재 지지도 1위의 유력 대권 후보가 된 것도 다 그 덕분이다.
한 나라의 고위 공직자는 처칠과 김구, 그리고 윤석열처럼 ‘어흥’ 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권력이 시킨다 해도,
자신이 판단할 때 그 지시가 부당하다면 거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질병관리청장인 정은경의 행보는 매우 아쉽다.
한때 정은경 청장은 우리 국민의 영웅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코로나19로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질 때,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코로나를 잘 막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늘 초췌한 모습으로 TV에 나와 확진자 숫자를 발표하는 그의 모습에서
국민은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그녀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 2022년 대선 후보로 정은경을 거론하는 사람마저 있었다.
그 인기는 오래가지 못해서, 지금 그녀를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조기에 종식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방역을 정치화할 때마다 정은경은 침묵했으니까.
11월 중순, 코로나 확진자가 300명 이상씩 발생한 적이 있다.
이보다 10여 일 전에 있었던 민노총 집회를 확산 원인으로 지목하는 게 맞지만,
서울시 방역통제관 박유미가 한 말은 다소 황당했다.
사랑제일교회가 주관한 8.15 집회가 코로나 재확산의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정은경이 나서서 “그건 너무 나갔다”고 한마디 해주면 좋으련만,
그녀는 그러는 대신 언제나처럼 확진자 수만 읊었다.
둘째, 11월 중순 이후 감염병 전문가들은
1~2주 후면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이 넘는다고 경고하면서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병상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따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정은경이 나서서 선제적 방역을 주문해야 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도 정부는 3단계를 시행하는 대신
‘3단계보다 더 강력한 2.5단계’ 같은 말장난을 하고 있지만, 정은경은 이에 대해선 침묵한다.
하나만 더 예를 들자.
지난 9월 11일, 문 대통령은 질병관리청이 있는 오송으로 가 정은경에게 청장 임명장을 줬다.
대통령이 차관급 인사에게 직접 임명장을 주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청와대로 부르는 대신 현장으로 직접 가는 일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대통령은 당시만 해도 인기가 있던 청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퍼포먼스를 통해
지지율을 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정은경이 정말 방역을 생각했다면, 임명장 같은 건 비대면으로 달라고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고,
질병관리청 직원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임명장을 받는다.
임명장을 받는 순간 정은경은 행복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정은경은 윤석열과 달리 ‘어흥!’ 하는 공직자가 아니었고,
이는 자신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방역에 해를 끼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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