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中의 6·25 거짓말
입력 2020.10.28 03:18
1949년 중국 국·공 내전의 승리가 공산당으로 기울자 김일성은 한반도 공산화도 시간문제로 봤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든든한 후원자로 둔 데다 한국에는 2000여명의 미 군사 고문단만 남아 있었다.
문제는 미국의 참전 가능성이었다.
스탈린은 미국과 전면전을 우려해 김일성의 거듭된 공격 지원 요청을 보류했다.
그런데 1950년 1월 미국이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6·25 남침 계획을 승인하며 중국 마오에게 도우라고 했다.
중국이 북에 넘겨준 조선인 2개 사단은 남침 주력 부대가 됐다.
▶남침 직후인 1950년 7월 김일성 특사를 만난 마오가
“중국은 파병을 위해 32만명 군단 4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는 베이징대 논문이 있다.
6·25 발발 10여일 만에 조기 파병으로 낙동강 전선에 몰린
한국군과 미군을 소멸시키려 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직접 위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는다)’를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는 남침 모의까지 같이했다.
일이 틀어지자 군대를 보내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았다.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에 마오는
“위군(僞軍·한국군)을 집중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무장도 경험도 없는 한국군을 표적으로 한 것이다.
항미원조 기념일도 한국군에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이다.
북한군은 남침 후 얼마 안 돼 사실상 소멸됐다.
6·25는 중공군과 싸운 전쟁이다.
국군 전사자들, 1000만 이산가족 대부분도 중공군 참전으로 발생했다.
▶중국 참전을 결정하는 군 지도부 회의에 ‘사령관’이 될 펑더화이가 바쁘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그의 참모였던 시중쉰이 참가했다.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다.
시중쉰은 “미국이 싸움을 걸어왔다”며 참전 정당성을 강변하던 마오를 믿었을 것이다.
시진핑이 부주석이던 2010년부터 6·25를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한 건
누가 적어준 말이 아닐 것이다.
▶6·25는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침략 전쟁이다.
희생된 우리 민간인만 100만명이다.
그런데도 시진핑은 ‘평화 수호’ 전쟁이라고 했다.
한국민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고도 역사 왜곡을 한다.
남침의 증거가 소련 측 문서 공개로 백일하에 다 드러났는데
중국은 아직도 남침을 부인하거나 흐리며 미국이 침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그런 중국 눈치를 보는 한국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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