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62] 美 대법원엔 사법부의 아버지와 사법부의 수치가 나란히 있다
미국 대법원과 대법원장들
입력 2020.10.13 03:00
코린트 양식의 열주들이 웅장한 대법원 현관. 들어가는 입구 왼쪽의 좌상은 정의를 상징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워싱턴 D.C.의 중심부는 마치 고대 아테네나 로마를 옮겨다 놓은 듯하다. 주요 건물들의 외관은 그리스·로마 양식이고, 색깔도 온통 하얗다. 백악관, 국회의사당은 물론이고 링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Supreme Court)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법원은 국회의사당 바로 뒤편에 있다. 두 줄로 배열된 16개 코린트 양식의 화려한 열주가 웅장하게 정면을 장식하고 있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양옆으로는 두 개의 좌상이 당당하다. 오른쪽의 검을 잡은 남자는 법의 권위를, 왼쪽의 법전을 든 여자는 정의를 상징한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법 앞에 동등한 정의(Equal Justice Under Law)’란 문구가 새겨져 있고, 그 위의 삼각형 페디먼트(Pediment·박공벽)에는 ‘자유(Liberty)’를 상징하는 여인이 ‘질서(Order)’와 ‘권위(Authority)’를 뜻하는 두 남자의 호위를 받으며 왕좌에 앉아 있다.
법은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
토마르=송동훈
미국 대법원은 이렇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입구를 드나드는 모두에게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법은 동등한 정의를 부여한다는 문구에서 특권과 차별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민주국가의 상식을 얘기하고 있다. ‘자유’를 중심으로 한 페디먼트 조각은 법치 사회에서 법은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는, 질서와 권위는 자유를 지키는 수단일 뿐 자유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선언한다. 그렇게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긴 홀을 따라 대법원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다.
외관이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라면, 내부는 소박하지만 강건한 도리아 양식이다. 내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역대 대법원장들의 흉상이 전시된 공간과 역사적인 판결이 새겨진 벽면들이다. 그렇다. 이 건물이 아무리 크다 한들 건물에 불과하고, 장식이 화려한들 장식에 불과하다. 대법원을 대법원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판사다. 판사의 판결이다. 초대 대법원장 존 제이(John Jay·재임 1789~1795년)부터 16대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William Rehnquist·재임 1986~2005년)에 이르기까지 16명의 판사. 판결을 통해 미국의 대법원을, 미국이란 나라를 만들어 온 판사들이다.
미국 대법원의 4대 대법원장 존 마셜의 초상화./위키피디아
미국 대법원의 5대 대법원장 로저 태니의 초상화. 비록 같은 대법원장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마셜이 미국 사법부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반면, 태니는 권력과 시류에 편승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오늘날까지 사법부의 수치로 기억되고 있다./위키피디아
존 마셜, 사법부의 아버지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은 4대 대법원장 존 마셜(John Marshall·재임 1801~1835년)이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된 마셜은 무려 3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재임하면서 미국 대법원의 초석을 쌓았다. 마셜은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과 동시대를 살았던 버지니아인이었다. 성격은 강직했고, 지성은 탁월했으며, 인품은 순박했다. 독립 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 밑에서 함께 싸웠다. 그때부터 워싱턴의 영향을 받은 마셜은 강력한 연방정부 구성을 통해 통일된 국가를 설립해야 한다는 연방주의자가 됐다. 마셜은 대법원장직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연방정부를 강화하고, 연방정부에 통일성과 권위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대법원에 법률이 헌법에 맞는지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대법원의 권한을 무한대로 늘렸다. 그 결과 대법원은 대통령, 의회와 대등한 통치기관으로 성장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주의 권리를 옹호했던 대통령 제퍼슨은 대법원장 마셜과 임기 내내 반목하고 충돌하고 화해하기를 되풀이했다. 두 사람의 오랜 정치적 경쟁과 긴장 관계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정치의 이상을 증진시켜 나가는 데 크게 공헌했다.
미국 국회의사당에 진열된 로저 태니 전직 대법원장의 흉상. 지난 7월 하원은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연합 지도자들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때 태니도 포함됐다. /AP연합뉴스
로저 태니, 사법부의 수치
제퍼슨의 후임 대통령들도 존 마셜과 반목했다. 특히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때 심했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잭슨은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는 데 분노했다. 그러나 아무리 인기 있는 대통령이라도 법에 보장된 대법원장의 임기(종신제)에 손댈 수는 없었다. 잭슨은 그저 마셜이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때가 오자 자신의 최측근인 메릴랜드주(州) 출신의 로저 태니(Roger Taney·재임 1836~1864년)를 후임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태니 대법원의 책임은 막중했다. 노예제를 둘러싸고 미국 사회가 점차 남북으로 갈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책무는 헌법 정신의 테두리 안에서 올바른 법적 판단을 통해 분열을 막고 통합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니의 대법원은 거꾸로 갔다. 태니 대법원장은 노예주 출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1857년 3월 드레드 스콧이란 노예의 신분을 둘러싼 재판에서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통해 ‘헌법은 백인만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 흑인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으며 그들은 일종의 자산’이라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연방의회에는 주가 되기 직전 상태에 놓인 준주(準州)에서 노예제도를 금지할 권한이 없다고도 했다. 충격적인 판결이었다. 남부의 노예제 지지자들은 환호했고, 북부의 노예제 반대자들은 분노했다. 태니의 대법원은 노예제를 옹호함으로써 역사적인 오점을 남겼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남북전쟁 발발에도 기여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대법원
존 마셜은 위대한 업적을, 로저 태니는 수치스러운 이름을 남겼다. 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흉상은 대법원장들이 전시된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영광도 치욕도 결국엔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인 것이다. 마셜과 태니 외에도 수많은 대법원 판사가 있었다. 간혹 후대로부터 비판받는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들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의 신조가 있었다. 대통령과 국회가 미국 민주주의의 선봉이라면, 법원은 보루라는 신조. 그래서 미국 대법원은 미국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9명의 대법관은 정의를 구현하고, 사회의 가치 기준을 설정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제다이들인 셈이다.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한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나 권력자는 대법원을 입맛대로 구성해서 마음껏 주무르려 했다. 제퍼슨이나 잭슨같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통령도 그러하니, 보잘것없는 대통령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법원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강직했다. 많은 경우 권력 편에 서기보다는 사회의 공의(公義)와 시민의 자유 편에 서서 싸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결국 사람이다. 미국 대법관 상당수는 비굴하게 권력에 아부하고 보신하려 하지 않았다. 민주국가에서 법원이 무너지면 독재가 만개(滿開)하고,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매명(賣名)의 치욕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권력과 법원 간의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 개인의 권리를 둘러싼 최후의 전쟁이다. 양심적이고 윤리적이며 용기 있는 법관들이 없다면 법원은 권력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 법원이 패배한다면 우리와 후대의 운명은 어두울 것이다. 미국 대법원 건물 곳곳에 새겨진 위대한 법의 정신과 정의의 상징이 부디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부질없는 짓일까?
[대법원]
대법원에 전시된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흉상. /송동훈
미국 대법원이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연방 대법관 사망과 후임 인선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대법원의 보수화를 강화하기 위해 대선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아이콘인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 판사를 지명했다. 배럿이 청문회를 통과해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그녀는 미국 대법원 역사상 다섯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소토마요르(Sotomayor), 케이건(Kagan)과 더불어 세 번째 현직 여성 대법관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Sandra Day O’Connor·1930년)이다. 오코너는 1981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고, 2006년 은퇴했다. 그녀의 대법관 임명은 미국 사법사와 여성사에서 중요한 진보였다. 공화당 출신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오코너에게 민주당 출신 오바마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한 이유다(2009년). 미국 대법원 곳곳에서 그녀의 동상과 흉상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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