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송동훈의 세계문명기행] [61]워싱턴 국립 대성당과 윌슨의 묘

colorprom 2020. 9. 29. 15:17

[송동훈의 세계문명기행]

[61]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돌 아래, 윌슨의 理想이 잠들다

 

워싱턴 국립 대성당과 윌슨의 묘

 

송동훈 문명 탐험가

 

입력 2020.09.29 03:00

 

 

 

 

 

 

 

워싱턴 D.C.의 중심 도로 중 하나인 매사추세츠 애비뉴를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대로인 위스콘신 애비뉴와 만나게 된다. 그 교차로의 북동쪽에 서 있는 웅장한 건물이 ‘워싱턴 국립 대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이다. 순간적으로 유럽의 어느 유서 깊은 도시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성당은 전형적인 중세 고딕 양식이다.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in America)’ 워싱턴 교구 성당인 이곳은 ‘국립 대성당’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교회이기도 하다.

워싱턴 국립 대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 중 스페이스 윈도는 우주로의 도전과 성과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상단 중앙에는 달에서 우주인들이 직접 가져온 월석이 박혀 있다./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을 대표하는 국립 대성당

미국을 대표하는 교회답게 외관과 내부 모두 상징적인 장식과 조각들로 가득하다. 특히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사방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볼만하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신랑(身廊‧Nave)의 남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스페이스 윈도(Space Window)’다. 대우주와 소우주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1974년). 붉은 태양의 한가운데 박힌 작은 돌은 우주인들이 달의 ‘고요의 바다(Sea of Tranquility)’에서 가져왔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을 향한 거대한 전진을 상징하기 때문일까? 스페이스 윈도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묘한 전율에 휩싸이게 된다. 남쪽 신랑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것은 단아한 석관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교회 안에 꽃과 문장으로 돋보이게 장식된 석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덮개에 오래된 문체로 이름이 조각돼 있다. ‘Woodrow Wilson’. 미국의 28대 대통령이다. 그는 하나의 이상(理想)을 상징한다.

워싱턴 국립 대성당의 웅장한 외관. 중세 고딕 양식을 본뜬 좌우대칭의 종탑과 중앙의 장미창이 인상적이다./게티이미지뱅크

교수, 총장, 주지사,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856년 버지니아주(州) 스탠턴(Staunton)에서 태어났다.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를 떠돌며 자랐다. 탁월한 지성과 성실한 태도는 윌슨에게 최고의 교육을 선사했다. 프린스턴 대학, 버지니아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공부한 윌슨은 떠오르는 정치학자가 됐다. 모교 프린스턴 대학에서 재직할 당시, 윌슨은 명강의로 이름 높은 인기 교수였다. 명성에 힘입어 프린스턴 대학 총장(재임 1902~1910년)이 된 윌슨은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조치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바야흐로 개혁과 진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국력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세계 문제에 개입했다. 대내적으로는 정부의 방임하에 무분별하게 커지던 소수의 트러스트(기업합동)를 규제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완화시키기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개입과 개혁은 시대의 흐름이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학 총장 윌슨에게 주목한 이유다. 민주당은 윌슨을 뉴저지주 주지사 후보로 내세웠고, 윌슨은 공화당 텃밭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주지사 윌슨은 대학 총장 때와 마찬가지로 개혁에 전력을 다했으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중앙 정계에서 윌슨은 무명이나 다름없었지만 민주당의 막강한 원로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등의 후원에 힘입었다. 1912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윌슨은 선거인단 531명 중 435명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공화당 후보가 루스벨트(T. Roosevelt‧26대 대통령)와 태프트(W. H. Taft‧27대 대통령)로 분열된 탓도 있지만, 윌슨의 선명한 개혁주의자 이미지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재임 1913~1921년). /위키디피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윌슨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유능하고 강력한 내각을 구성했고, 각종 개혁을 추진했다. 관세 인하, 소득에 대한 누진세 도입, 기업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연방통상위원회 설립, 현재 모습의 연방준비은행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1914년 8월 국내 문제 해결에 몰두하던 윌슨에게 유럽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암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앞다퉈 서로에게 선전포고했다. 전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비화됐다. 평화주의자였던 윌슨은 확고하게 중립을 지켰다. 전쟁의 광풍은 갈수록 윌슨을 흔들어댔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공격으로 미국 상선이 연이어 격침되고 미국인 사상자가 늘어나자 더 이상의 인내는 불가능했다. 1917년 4월 2일 윌슨은 상하 양원에 전쟁 선포를 요구했다. 의회는 승인했고, 군대는 유럽을 향했다. 전쟁에 임하며 윌슨은 자신의 생각을 모두에게 밝혔다.

 

 

“우리는 이기적인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정복도 지배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배상금을 얻을 생각도 없고, 우리가 기꺼이 바칠 희생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받을 생각이 없다. 단지 인류가 가진 권리를 옹호할 뿐이다.”

유럽 열강들 중심의 제국주의 체제가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그 순간에 윌슨은 도덕적 보편성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이다. 그 위로는 자유, 자치, 민주주의와 평화의 이상이 찬란히 휘날렸다. 원대하지만 허황된, 순수하지만 교만한 이상! 초기 뉴잉글랜드 식민지의 지도자 존 윈스럽이 제시했던, 세계가 우러를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를 건설해야 한다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이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나 세계로 향했다.

워싱턴 국립 대성당 내부에 마련된 윌슨 대통령의 석관. 국제적으로 자유주의와 영구 평화의 이상을 설파했던 윌슨은 미국 수도에 묻혀 있는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다./위키피디아 Tim Evanson

사라지지 않을 이상을 남기다

1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참전으로 영국‧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이 졌다. 승자와 패자 사이에 협상이 시작됐다. 윌슨은 역사에서 전쟁을 영구히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직접 프랑스로 향했다. 협상에 앞서 윌슨은 전후 세계 질서를 위해 역사적인 ’14개조 원칙(Fourteen Points)'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민족자결, 항해의 자유, 공개 외교, 군비 축소, 자유무역의 원칙이 포함됐다. 이런 원칙을 강제하고 미래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을 창설하자는 제안도 들어있었다.

협상 시작부터 윌슨의 이상주의는 승전국들의 이기적인 국익과 다퉈야 했다. 윌슨은 자신이 주창했던 원칙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국제연맹 창설만은 가까스로 지켜냈다. 그러나 윌슨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었다. 베르사유 조약과 연맹 가입에 대한 미국 상원의 동의였다. 상원은 부정적이었다. 윌슨은 타협을 거부하고 대중에게 직접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다. 1919년 9월 25일, 윌슨은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서 연설한 후 심한 두통으로 쓰러졌다. 윌슨은 사경을 헤맸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으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은 불가능했다. 그동안 베르사유 조약도, 국제연맹 가입도 상원에서 부결됐다. 미국의 불참으로 국제연맹은 절름발이가 됐다. 윌슨은 자신의 이상이 시대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윌슨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육신은 국립 대성당에 묻혔다(1924년 2월).

인류는 윌슨이 꿈꿨던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만들기는커녕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그런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윌슨의 이상이 사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황홀한 이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윌슨의 이상은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계승되고 있을 것이다./워싱턴 D.C.=송동훈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 왼쪽부터 트럼프, 오바마, 클린턴, 카터 대통령이다. /위키디피아

[워싱턴 국립 대성당]

워싱턴 D.C.의 국립 대성당은 미국을 대표하는 교회답게 국가적인 행사에 자주 이용된다. 전직 대통령의 국장(國葬)이 대표적으로 아버지 부시(41대 대통령‧2018년), 포드(38대‧2007년), 레이건(40대‧2004년), 아이젠하워(34대‧1969년)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치러졌다. 대통령에 대한 추모 행사와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 미국 사회에 크게 기여한 각계각층 인물들에 대한 추모 행사도 열린다. 세계적인 사회사업가이자 작가인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인 교육가 앤 설리번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송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