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70] 진실과 기쁨은 크고 높고 밝은 데만 있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
-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0.07.29 03:12
내 인생이 택했던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왜 못했던가, 끙끙대고 속을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하고 가치 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추구하는 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 만하다.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중에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집사라고 한다던데
최근에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르는 게 유행이란다.
집사란 원래 저택에 고용되어 주인을 모시며 집안일을 도맡아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흐트러짐 없는 앤서니 홉킨스의 모습이 오래 기억되는 '남아 있는 나날'은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35년간 대저택의 집사로 충직하게 일해 온 스티븐스의 인생을 회고한다.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쓴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 작가로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부모와 함께 다섯 살에 일본을 떠났고 작품도 영어로 썼지만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오에 겐자부로에 이어
일본인에게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의 자긍심을 안겨준 작가가 됐다.
김규나 소설가
우리나라 독자들도 매해 가을이 되면 노벨문학상 심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좋아하는 작가가 후보에 오르고 수상하길 바란다.
그러나 한 달 평균 여섯 권의 책을 읽는다는 일본과
1년 평균 6.1권, 성인 열 명 중 네 명이 1년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보면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다.
월드컵 우승이나 올림픽 금메달처럼 노벨문학상을 탄다 해도
내가 읽은 책 한 권 , 오늘 밑줄 그은 문장 한 줄보다 귀할 리 없다.
집사라서 행복한 고양이 주인들처럼,
낮은 자리일망정 성실한 노력에서 긍지를 찾은 스티븐스처럼
진실과 기쁨은 크고 높고 밝은 데만 있는 건 아니다.
지칠 때 꺼내 읽고 용기와 지혜를 얻는 책이 있다면 어떤 길을 선택했든 즐겁게 갈 수 있다.
마음에 담아둔 사랑 하나 있으면 외로운 생도 견딜 만해지는 것처럼.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9/2020072900115.html
'세상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식은 창조적 활동이다 [행복한 경영이야기] (0) | 2020.07.30 |
---|---|
불법 대북 송금 (0) | 2020.07.29 |
[이한우의 간신열전] [42] 당나라 현종 때나 지금이나 (0) | 2020.07.29 |
4·3 특별법 개정안 (0) | 2020.07.29 |
버리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행복한 경영이야기] (0) | 2020.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