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말러 교향곡 9번

colorprom 2020. 7. 14. 14:12

[일사일언] 2분간의 침묵

 

조선일보

 

  •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2020.07.14 03:10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2010년 스위스 루체른에서는 2분 동안 마법의 순간이 펼쳐진다.

루체른 문화 컨벤션 센터 카카엘에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었던 날이다.

분명 곡이 전부 끝났음에도 박수는 나오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2분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이날 연주된 작품은 말러 교향곡 9번이었다. 말러 교향곡 9번은 '고별'이라는 소재를 다룬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음들이 들릴 듯 말 듯 사라지며, 곡이 조용히 마무리된다.

모든 생명이 꺼지고 침묵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의 자필 악보에는 '오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안녕! 안녕!'이라는 메모들이 남아 있다.

본공연에서 아바도는 마지막 악장이 끝나갈 때쯤 조명도 서서히 어둡게 해줄 것을 주문한다.

작품이 끝을 향할수록 콘서트홀은 깜깜해졌다.

마침내 최후의 음은 소멸했다. 조명도 자취를 감췄다. 오선지 위에 적힌 것들은 제 역할을 끝냈다.

콘서트홀은 적막에 잠겼고, 지휘자는 명상에 잠겼다. 휘두르던 지휘봉은 가슴에 가져다 두었다.

침묵이라는 오선지 너머의 음악이 시작된 것이다.

적혀 있는 음들은 없지만 밀도는 더욱 높았다.

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은 관객들을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말러의 교향곡이 말하는 것처럼 소멸 이후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순간을 지키려 박수를 치지 않고 기다렸다.

 

마침내 2분여에 달하는 침묵의 순간이 끝나고, 객석에서는 서서히 박수가 흘러나왔다.

지휘자도 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의와 같던 엄격하고도 경건한 순간은 종료되었다.

관객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악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오선지 너머에 존재하는 마법의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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