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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149] 부부의 세계

colorprom 2020. 5. 16. 15:39

[백영옥의 말과 글] [149] 부부의 세계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05.16 03:14

백영옥 소설가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본 후배에게서

 

"정말 결혼하면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성공적인 결혼은 늘 똑같은 사람과 여러 번 사랑에 빠지는 걸 필요로 한다"라는

 

미뇽 매클로플린의 말로 답을 대신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진부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이야기는 질투·배신·불륜 같은 이야기들이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 속의 숨겨진 욕망 때문일 것이다.

 

내 주위에는 결혼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지만,

 

이혼으로 오랜 불행에서 벗어난 사람도 많다.

 

이보다 더 많은 건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개인의 선택이다.

 


자전거를 새로 사면 갑자기 같은 브랜드의 자전거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은

 

며칠 안에 그날 외운 단어를 길가의 간판이나 영화 등에서 마주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이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마법, 이것이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이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혼한 사람의 삶은 잘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 비유처럼 사랑이 진부해지는 지름길이 결혼인 걸까.

 

 

하지만 어떤 부부는 '진부함'을 '친숙함'이라 고쳐 읽으며 노력한다.

 

대개의 진실은 늘 한발 먼 곳에 있다.

 

한 천주교 신부님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고된 수도 생활이 결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나'나 '너'가 아닌 '우리'의 정체성 을 만든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많은 비유가 존재하지만,

 

나는 종종 하나의 나침반을 들고 함께 걷는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나침반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나서야 비로소 더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멈춘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고 멈춘 나침반은 고장 난 나침반이다.

 

부부 역시 방향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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