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5.15 03:12
지난 2월 말 해발 700m 깊은 산골의 아침은 잔설 속에 따뜻한 방이 여전히 그리운 곳이었다.
공동체에 찾아온 이들이 따사로운 햇살 속에 식사를 하던 중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개의 비명이 연속해서 들렸다.
나가보니 우리 집 똘이 키의 서너 배나 되는 아랫집 수캐가 암내를 맡고 와서,
둘이 붙었다가는 떨어지지 않아 매달린 채 끌려다니는 것이었다. 참담한 꼴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 사이에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용암처럼 이는 듯했다.
"아니, 하필이면 저렇게 못생긴 X개가…."
똘이는 지난해 여름 아랫집 바로 그 X개에게 오른쪽 앞다리를 물려 한 달 동안 깁스를 한 채 지냈다.
아랫집에서는 "우리 개가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웃 간 평화를 위해 없던 일로 하고 원주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다.
실로 기구한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만남이란 은총처럼 저주처럼, 아니 소나기처럼 저 밖에서 왔다가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때론 악연마저도 끊어지지 않는다.
똘이는 금세 임신의 무거운 몸이 된 채로 언덕과 층계를 오르내렸다.
똘이는 금세 임신의 무거운 몸이 된 채로 언덕과 층계를 오르내렸다.
2개월여가 지나자 2층 마루 밑에 마련된 큰 박스 안에서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고
혼자 산후 처리를 완벽하게 해 놓았다.
새끼들은 아비를 닮은 탓인지 금세 자랐다.
똘이의 작은 몸으로는 새끼 다섯 마리를 품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열 번은 젖을 먹이고 나면 바로 와서 또 먹고, 먹고 나면 바로 가서 또 먹이고,
종일 이 일뿐이었다.
쉼이 없고, 힘들어하는 표정도 없었다.
그 모성애가 애처롭고 처절하기만 했다.
동병상련일까.
이를 보다 못한 나이 드신 여성들이 돼지 뼈와 북어, 미역을 잔뜩 사다가 푹푹 고아 산후 조리를 해주었다.
애처로운 눈빛이었다.
그러나 정작 똘이는 한마디 불평 없이 제 새끼를 돌보는 데 모든 것을 다 바칠 뿐이었다.
기어코 일이 터졌다.
며칠 전 똘이는 호흡 장애를 일으켰다.
어느 날 저녁 가쁜 호흡으로 헐떡거리며 현관으로 왔다.
독초를 먹은 것일까.
얼마 지나자 앞뒤 어깨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모두 퇴근하고 문을 닫았다.
상황이 심각해 아는 내과 전문의에게 전화를 했다.
동영상을 찍어 보내니 이 정도 호흡곤란이면 머잖아 호흡근육 마비가 올 수 있어
밤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알고 보니 수유를 하느라 칼슘이 부족해 호흡장애가 온 것이었다.
순간 "똘이를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번쩍했다.
"이토록 생명을 낳고 키우고 있는 이 아이를 죽이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똘이가 기르는 다섯 아이는 어찌하나!"
나는 똘이를 안고 달렸다. 이웃 교회 목사님이 운전을 대신했다.
고속도로엔 비가 내렸다.
똘이는 사지가 뒤틀리고 숨이 막혀 괴로운지 차 안 이곳저곳을 비비고 파고들었다.
자정이 지나 목숨 건 레이스가 끝나고, 원주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곧바로 산소호흡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담당 수의사는 "산소 탱크에 넣었으니 몇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며
"어미는 자기 피와 뼛속의 칼슘까지 다 빼서 새끼의 몸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제 몸으로 감당키 어려운 큰 새끼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다 바치는 작은 개의 모성은
인간의 그 어떤 자의적 헌신보다 위대한 것이 아닐까.
이 우주 안에 흐르는 창조주의 생명 의지는
인간의 자의적 그 어떤 의지나 이념, 명분보다 얼마나 크고 경이로운가.
그 의지가 반영된 십자가의 사랑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떠나는 성도들을 바라보는 목회자로서 한없는 부족을 깨닫게 한다.
돌아오니 새벽 4시였다. 그 어떤 철야기도의 은혜와 말씀이 이보다 컸던가.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