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3.09 03:12
3·1운동의 함성이 잦아지던 1919년 가을
박승필이 제작비를 대고 신파극단 신극좌의 대표 김도산이 만든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개봉한 후
꼭 백 년 뒤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을 석권하고 골든 글로브를 거쳐
2020년 아카데미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네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움켜쥔 것은
한국 영화 백 년의 정점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대중문화의 두 총아, 영화와 대중음악에서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대중문화의 두 총아, 영화와 대중음악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오스카와 그래미라는 이름만으로도 여전히 막강하다.
유럽 백인 이민자들로 구성된 용광로 문화는
자본주의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 예술을 상품으로 사고하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음반 판매고를 집계하는 빌보드가 출범한 것은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나던 1894년이었다.
이때 음반 시장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악보 판매 차트만 존재했다
(그래서 아직도 미국에서 음반 판매가 단위가 'sheet'이다).
영화보다 음악이 대중적 시장을 먼저 형성하게 된 것은
영화보다 음악이 대중적 시장을 먼저 형성하게 된 것은
에디슨과 벨의 공적으로 탄생한 라디오의 역할이 컸다.
지금으로부터 꼭 백 년 전인 1920년 웨스팅하우스사가 본격적으로 라디오 방송 송출을 시작했다.
라디오가 음반 구매 욕구를 창출하는 강력한 미디어로 성장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1920년엔 라디오의 본격적인 등장만큼이나 혁명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그리고 1920년엔 라디오의 본격적인 등장만큼이나 혁명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뉴욕의 오케(Okeh) 레코드사에서 메이미 스미스라는 아프리카계 여성이 부른
'크레이지 블루스(Crazy Blues)'가 음반으로 녹음되어 이듬해까지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역시 아프리카계 밴드 리더인 페리 브래드퍼드가 작곡한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블루스의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울림이 매력적인 명곡이다.
메이미 스미스는 레코딩을 한 첫 번째 아프리카계 음악인이다.
메이미 스미스는 레코딩을 한 첫 번째 아프리카계 음악인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남부의 백인 단체들은 불매운동을 펼칠 거라며 위협했지만
오케의 프로듀서 프레드 하가르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음악의 시대가 마침내, 열렸다.
봉준호와 메이미 스미스, 정말이지 의미 있는 백 년이다.
봉준호와 메이미 스미스, 정말이지 의미 있는 백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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