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3.07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오랫동안 두 가지 일을 해 왔다. 강의·강연과 글을 쓰는 것이다. 50대 전후에는 글 쓰는 책임이 더 많았는데 요사이는 교실 강의는 끝났고 강연 시간이 더 많아졌다.
강연은 멀리 다녀올 때가 있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 집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피곤하기도 하고 정신적 부담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나를 소개해 주는 사회자가 "안병욱·김태길 교수는 먼저 가시고 김형석 교수가 대신 수고하신다"고 할 때다. 용기를 얻는다. '우리가 남겨 놓고 가는 일들을 마무리해 달라'던 안병욱 교수의 유언을 잊을 수가 없어서이다.
그런 공감대 때문일까. 강연회 전후에 독자들이 사인을 요청할 때 내 책이 아닌 안 교수의 책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번 충남에 갔을 때는 한 남자가 내 책을 내놓으면서 여자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내가 본인의 이름은? 하고 물었더니 아내를 대신해 받아 간다고 해 '좋은 남편'이라면서 웃었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애독자인 모양이다.
강연이 끝나고 문답 시간이었다. 한 점잖은 신사가 말했다. "질문은 아니고 감사하러 나왔습니다. 제가 젊어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라디오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력 생각은 버리세요. 고졸 사원은 졸업하고 나머지 70리 길을 더 걸어가야 하고 대졸 사원은 60리를 더 가야 성공한다고 생각하세요. 주어진 100리 길을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일하는 이가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대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말단 사원으로 출발했는데 과장·부장을 거쳐 지금은 작지 않은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만일 그때 김 교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오늘 교수님을 직접 뵈니까 무어라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 나는 물론 청중 모두가 숙연해졌다.
강연은 멀리 다녀올 때가 있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 집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피곤하기도 하고 정신적 부담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나를 소개해 주는 사회자가 "안병욱·김태길 교수는 먼저 가시고 김형석 교수가 대신 수고하신다"고 할 때다. 용기를 얻는다. '우리가 남겨 놓고 가는 일들을 마무리해 달라'던 안병욱 교수의 유언을 잊을 수가 없어서이다.
그런 공감대 때문일까. 강연회 전후에 독자들이 사인을 요청할 때 내 책이 아닌 안 교수의 책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번 충남에 갔을 때는 한 남자가 내 책을 내놓으면서 여자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내가 본인의 이름은? 하고 물었더니 아내를 대신해 받아 간다고 해 '좋은 남편'이라면서 웃었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애독자인 모양이다.
강연이 끝나고 문답 시간이었다. 한 점잖은 신사가 말했다. "질문은 아니고 감사하러 나왔습니다. 제가 젊어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라디오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력 생각은 버리세요. 고졸 사원은 졸업하고 나머지 70리 길을 더 걸어가야 하고 대졸 사원은 60리를 더 가야 성공한다고 생각하세요. 주어진 100리 길을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일하는 이가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대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말단 사원으로 출발했는데 과장·부장을 거쳐 지금은 작지 않은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만일 그때 김 교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오늘 교수님을 직접 뵈니까 무어라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 나는 물론 청중 모두가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