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서독 광부·중동 건설현장… '노력 없는 공짜'가 있겠습니까 (김형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20. 3. 7. 16:22




서독 광부·중동 건설현장… '노력 없는 공짜'가 있겠습니까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3.07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일러스트=김영석
일러스트=김영석
오랫동안 두 가지 일을 해 왔다. 강의·강연과 글을 쓰는 것이다. 50대 전후에는 글 쓰는 책임이 더 많았는데 요사이는 교실 강의는 끝났고 강연 시간이 더 많아졌다.

강연은 멀리 다녀올 때가 있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 집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피곤하기도 하고 정신적 부담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나를 소개해 주는 사회자가 "안병욱·김태길 교수는 먼저 가시고 김형석 교수가 대신 수고하신다"고 할 때다. 용기를 얻는다. '우리가 남겨 놓고 가는 일들을 마무리해 달라'던 안병욱 교수의 유언을 잊을 수가 없어서이다.

그런 공감대 때문일까. 강연회 전후에 독자들이 사인을 요청할 때 내 책이 아닌 안 교수의 책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번 충남에 갔을 때는 한 남자가 내 책을 내놓으면서 여자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내가 본인의 이름은? 하고 물었더니 아내를 대신해 받아 간다고 해 '좋은 남편'이라면서 웃었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애독자인 모양이다.

강연이 끝나고 문답 시간이었다. 한 점잖은 신사가 말했다. "질문은 아니고 감사하러 나왔습니다. 제가 젊어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라디오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력 생각은 버리세요. 고졸 사원은 졸업하고 나머지 70리 길을 더 걸어가야 하고 대졸 사원은 60리를 더 가야 성공한다고 생각하세요. 주어진 100리 길을 일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일하는 이가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대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말단 사원으로 출발했는데 과장·부장을 거쳐 지금은 작지 않은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만일 그때 김 교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오늘 교수님을 직접 뵈니까 무어라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 나는 물론 청중 모두가 숙연해졌다.


정초에 경남에 갔을 때는 강연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한 초로의 신사가 "이 편지는 안 교수님께 드리고 싶었는데 계시지 않아 대신 선생님께 드립니다" 하며 건네주었다. 아마 흥사단 관계로 안 선생을 존경해 왔는지 모르겠다. 멀리서 기차를 타고 왔던 사람이다.

편지 내용은 전부 나라 걱정이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 선배는 잘살아 보자는 뜻을 안고 서독에 광부로 가고 간호사로 갔습니다. 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세대는 중동으로 가 일했습니다. 우리가 고생하면 후대가 잘살겠지, 하는 희망이었습니다. 이제 가난에서는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지방에서도 일은 안 하고 공짜 돈만 찾아다닙니다. 나라에서 주기 때문입니다. 노인정까지 찾아와 돈을 주면서 일도 아닌 일거리를 줍니다. 취업 숫자를 늘려 보고하기 위해서인지 모르나 젊은이들까지 일을 사랑하지 않고 '노력 없는 공짜'를 찾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한탄이 들어 있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6/20200306019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