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17 03:17 | 수정 2020.02.17 03:23
[조선일보 100년 기획]
[포퓰리즘에 무너지는 나라] [3] 볼리비아 최형석 기자 르포
모랄레스 재임중 최저임금 5배로… 은퇴연금도 고용주 부담만 늘려
"원주민에 축구장 2000개 선물"
지지층 아직도 "모랄레스는 태양"
볼리비아 수도 인근 도시인 엘알토의 원주민 판자촌 한가운데 푸른 색의 인조 잔디 축구장이 세워져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판자촌에서 나온 주민은 "민생은 파탄 수준인데 축구장이 무슨 소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이 축구장 개장식에 에보 모랄레스 당시 대통령이 참관했다.
좌파 정당 '사회주의운동(MAS)' 소속 모랄레스는 대통령 4연임을 노리고,
2018년 초 정부 돈 3억달러(약 3500억원)를 투입해 전국에 인조 잔디 구장 2000곳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에 가까운 큰 금액이었다.
축구장은 주로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건설됐다.
그는 "원주민들이 원하는 게 축구"라는 이유를 들었다.
5년 연속 재정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선심성 정책을 꺼냈다는 비판이 일자
일부 축구장을 병원 시설로 분류하는 통계 조작도 부렸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재임한 13년(2006~2019) 동안 자신과 같은 인종인 원주민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정실주의(크로니즘)'에 기초해 원주민들에게 현금을 살포한 것이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재임한 13년(2006~2019) 동안 자신과 같은 인종인 원주민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정실주의(크로니즘)'에 기초해 원주민들에게 현금을 살포한 것이다.
그러나 복지 재원이었던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퍼주기도 한계를 맞았다.
국가 부도 소문이 나돌 정도로 경제는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그 틈을 중국 자본이 파고들어 볼리비아 경제를 예속화했다.
◇원주민만 퍼주는 편 가르기 포퓰리즘
작년 12월 17일 오전 엘알토 은행들 앞엔 원주민들이 줄을 선 채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원주민만 퍼주는 편 가르기 포퓰리즘
작년 12월 17일 오전 엘알토 은행들 앞엔 원주민들이 줄을 선 채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호세 카를로스(64)씨는 "노인 수당을 받기 위해서 한 시간 전쯤 먼저 와서 줄을 섰다"고 말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부정 선거를 저지르고 작년 11월 아르헨티나로 망명했지만
포퓰리즘 유산은 그대로 남았다.
모랄레스는 2010년 민간은행들이 관리하던 은퇴 연금을 국영화하며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58세로 인하했다.
자녀가 셋 이상인 여성은 55세로 더 낮췄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연금 수령 연령을 올리는 다른 나라들과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연금 대상에 광부·시장 상인·택시 기사 등 직업을 추가했다.
원주민이 대다수인 저소득층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수령액은 소득의 25% 수준에서 62%로 높였다.
노동자는 연금 불입액의 일부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고용주에게 떠넘겼다.
재원 마련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모랄레스는 "돈이 부족하면 천연가스 수출 소득에 과세해 마련하겠다"며
오히려 "전 국민이 연금을 받게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무상 보조금 보따리도 풀었다.
무상 보조금 보따리도 풀었다.
60세 이상 노령 보조금 월 수령액을 취임 전보다 133% 인상시켰다.
임산부들은 무상으로 병원 진료와 가사용품을 받게 했다.
최저임금은 5년간(2011~2014년) 매년 20% 이상씩 급격히 올렸다.
◇쌍둥이 적자에 외환 위기설까지 나돌아
국가 재정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던 원유·천연가스 가격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락하면서
◇쌍둥이 적자에 외환 위기설까지 나돌아
국가 재정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던 원유·천연가스 가격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락하면서
퍼주기 정책도 위기를 맞았다.
빚을 내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11년 GDP 대비 35%였던 국가 부채는 작년 58%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등 쌍둥이 적자는 작년까지 5년 연속 발생했고,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외환 보유액이 2014년 말 140억달러에서 작년 말 45억달러로 바닥을 드러내면서 외환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그런데도 모랄레스는 "우리 경제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방어가 잘되고 있다"며 자화자찬만 했다.
그리고 물밑으로 중국에 손을 벌렸다.
그리고 물밑으로 중국에 손을 벌렸다.
그 결과 국가 총 외채(109억달러) 중 중국 빚이 70%를 넘게 됐다.
정부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지만 상환을 못 하면 지하자원 등 차압 조건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들은 자원 개발 등 볼리비아 국가사업에 낙찰됐고,
이 과정에서 중국인 노동력이 급속히 유입돼 원주민 실업 등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볼리비아 '편가르기 13년']
[볼리비아 '편가르기 13년']
반미정서 자극하며 美대사 임명 거부… 가톨릭과 대립도
1825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볼리비아의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는
1825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볼리비아의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는
평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말을 즐겨 썼다.
그러나 실상은 백인과 중산층을 정적(政敵)으로 몰아세웠다. 그가 롤모델로 삼았던 좌파 독재자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배운 전략이었다. 차베스의 이름을 딴 학교와 축구 스타디움까지 건설했던 모랄레스는 백인과 중산층 이상 국민을 각종 경제 지원과 인사 정책에서 배제했다.
그는 서구 흔적을 지워야 한다며 대통령궁에서 원주민 토속 의식을 거행해 가톨릭 교회와 대립했다. 반미(反美) 정서를 자극하며 11년 동안 미국 대사 임명을 거부했다. 대신 원주민들을 대거 정부·공기업 요직에 배치하고, 국기 외에 원주민 깃발(위팔라)을 만들어 공식 국가 상징으로 사용했다. 모랄레스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볼리비아의 운명을 결정짓게 해선 안 된다"는 적대적 발언으로 원주민들을 결속시켰다.
그는 부정선거로 망명했지만, 여전히 반대파 모함설을 주장한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접경 지역에 거처를 마련한 채 "돌아가면 민병대를 만들겠다"며 인구의 55%인 원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자신의 심복인 전 경제재정부 장관을 오는 5월 대선에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계획이다. 모랄레스도 5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임시정부는 그가 귀국하는 즉시 구속한다는 방침이다.
☞정실주의(크로니즘·cronyism)
능력보다는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을 앞세워 경제적 이익이나 인사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을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구분해 지지 세력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편 가르기식 포퓰리즘'도 정실주의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상은 백인과 중산층을 정적(政敵)으로 몰아세웠다. 그가 롤모델로 삼았던 좌파 독재자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배운 전략이었다. 차베스의 이름을 딴 학교와 축구 스타디움까지 건설했던 모랄레스는 백인과 중산층 이상 국민을 각종 경제 지원과 인사 정책에서 배제했다.
그는 서구 흔적을 지워야 한다며 대통령궁에서 원주민 토속 의식을 거행해 가톨릭 교회와 대립했다. 반미(反美) 정서를 자극하며 11년 동안 미국 대사 임명을 거부했다. 대신 원주민들을 대거 정부·공기업 요직에 배치하고, 국기 외에 원주민 깃발(위팔라)을 만들어 공식 국가 상징으로 사용했다. 모랄레스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볼리비아의 운명을 결정짓게 해선 안 된다"는 적대적 발언으로 원주민들을 결속시켰다.
그는 부정선거로 망명했지만, 여전히 반대파 모함설을 주장한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접경 지역에 거처를 마련한 채 "돌아가면 민병대를 만들겠다"며 인구의 55%인 원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자신의 심복인 전 경제재정부 장관을 오는 5월 대선에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계획이다. 모랄레스도 5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임시정부는 그가 귀국하는 즉시 구속한다는 방침이다.
☞정실주의(크로니즘·cronyism)
능력보다는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을 앞세워 경제적 이익이나 인사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을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구분해 지지 세력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편 가르기식 포퓰리즘'도 정실주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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