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호 공사

한국 온 지 3년 반 만에 새로운 도전 '서울탐구생활' 독자님, 감사합니다

colorprom 2020. 2. 15. 15:43



한국 온 지 3년 반 만에 새로운 도전 '서울탐구생활' 독자님, 감사합니다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20.02.15 03:00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안병현
일러스트=안병현
대한민국으로 온 지 3년 반 만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뉴스로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총선에 출마하기로 했다.
제일 아쉬운 것이 조선일보 주말 섹션 '아무튼, 주말' 독자와 이별하는 일이다.
사실 나는 '아무튼, 주말' 시작부터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린아이가 바깥세상을 모르고 태어나듯, 이 칼럼을 시작할 때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주말뉴스부 측은 내가 평소 북핵 문제, 북한 정치 얘기를 많이 하니
이 칼럼을 통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생생하게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독자들이 편히 읽을 수 있게 "어깨에 힘을 빼고 써달라"고 했다.

막상 쓰자니 고민이 컸다.
어떤 글로 데뷔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부엌에서 아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해서 싱크대 바닥에 있는 단추를 발로 눌러 수돗물을 틀고 잠그는 한국의 신기한 부엌 문화를 다룬
첫 칼럼(2018년 11월 3일 '냉장고 채소가 그대로, 우리 아내도 변했어요')이 탄생했다.

글을 쓰면서 제일 힘든 것이 글감을 찾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글 종자'를 찾는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 섹션을 펼쳐 들고
김형석 교수님의 '김형석의 100세 일기'부터 모든 칼럼과 기사를 샅샅이 읽어 보면서 글 종자를 찾았다.
쓰는 만큼 많이 읽었다.

정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내 글을 받는 담당 기자에게 혹시 아이디어가 없는지 조언을 구했다.
길을 걸어도, 커피숍에 들어가도, 드라마를 보면서도 고민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작은 수첩에 메모했다.

그래서 나온 글이 '김치가 공짜에 무한 리필, 가위로 자르기까지'
'술자리면 터지는 남북 군대 구라'
'눈 내려도 아무도 안 치우는 서울, 주민 동원해 싹 치우는 평양' 등이었다.

비난 댓글이 붙어도 댓글이 많으면 기분이 좋다.
'무플(댓글이 없는 것)보다 악플이 낫다'는 어느 지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떤 칼럼에 댓글에 많이 달리는지 살펴봤다.
남북 관계에 새로운 이벤트가 있었을 때 그와 관련한 문화적 측면을 쓰면 관심이 컸다.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냉면 먹는 모습이 나와 화제가 되었을 때,
서울의 평양냉면과 평양의 원조 평양냉면의 차이를 쓴 칼럼이 대표적이었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글감이 떠올라 북한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다룬 '북한판 스카이캐슬'을 쓰기도 했다.

글을 쓰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글 쓰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주말 휴식은 자연히 없어졌다.
지난해 매달 평균 한 주는 해외에서 보냈는데 그때도 칼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고
외국 공항에 도착해 카톡으로 담당 기자에게 원고를 보냈다.

칼럼이 예상보다 인기 있어 즐거웠다.
한번은 대기업 회장님들 모임에 초대받아 강의하고 식사한 적이 있다.
토요일마다 내 칼럼을 재미있게 읽는다고들 했다.
일행 중 한 회장님이 무슨 글인데 다들 재미있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내 칼럼 내용을 얘기했다.
기억력이 어떻게 그리 좋은지 필자인 나도 다 잊어버린 내용을 줄줄 꿰고 있었다.
내 칼럼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회장님은 대화에 끼려면 당장 읽어 봐야겠다고 했다.
아마 지금쯤 그분은 내 칼럼 팬이 되지 않으셨을까.

아무튼 토요일마다 나왔던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탐구생활'이
남북한 문화적 차이를 알리고 동질성을 살려 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바랄 것 없다.

이렇게 정이 든 '아무튼 주말'에서 하차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토요일마다 저의 미숙한 글을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