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08 03:20
[우한 폐렴 확산]
지난해말 우한폐렴 발생 알려… 유언비어 유포로 경찰조사 받아
지난달 환자 진료하다 감염돼 임신한 아내 두고 세상 떠나
"정부가 침묵 강요" 비난 들끓자… 관영매체, 뒤늦게 "존경받을 인물"
신종 전염병 발생을 경고했던 서른네 살 안과(眼科) 의사의 죽음에 중국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수많은 중국인이 그를 추모하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초기 대응에 실패한
중국 정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우한 폐렴 발생을 경고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의사 리원량(李文亮·34)씨가
7일 우한 폐렴에 걸려 숨졌다.
그가 일했던 우한시중신(武漢市中心)병원은 이날 새벽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력을 다해 치료했지만 그가 오전 2시 58분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임신한 아내, 아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최신 스마트폰과 테슬라 전기차를 좋아했고
영국 프로축구팀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의 경기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런 리씨를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휘슬블로어(내부 고발자)로 만든 것은 중국 정부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우한대 의대 동창 150여 명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우한) 화난수산물 시장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진 환자가 7명 발생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한 환자의 자료에서 사스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사한 검사 결과를 봤다고 한다.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시 당국이 이를 공개하지 않을 때였다.
그에게 연락한 것은 보건 당국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그는 1월 3일 밤 우한시 중난루(中南路) 파출소로 불려갔다.
경찰 2명은 사흘 전 그가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보여주며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사회질서에 엄중한 손실을 끼쳤다"고 했다.
경찰은 "반성하고 다시는 위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훈계서(訓戒書)를 내밀었고,
리씨는 거기에 서명한 후에 석방됐다.
그는 이후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압박감이 컸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가 경고했던 바이러스가 중국과 전 세계 20여국으로 퍼졌다.
그도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달 8일 82세 녹내장 환자를 진료하다 우한 폐렴에 걸렸다.
그는 이틀 뒤부터 발열 증세를 보여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의 부모도 감염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감염자가 급증하자 중국 언론은 리씨 사건을 주목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중국 언론 차이신 인터뷰에서
"그때 모두가 사실을 중시했다면 전염병 폭발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입원 중에도 "회복되는 대로 (진료) 일선에 나가고 싶다"며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는데 탈주병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확진 판정을 받은 지 5일 만인 6일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우한 폐렴 희생자가 됐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인터넷에서는 "시대의 영웅"이라며 추모 글이 이어졌다.
평범한 학생, 회사원들은 "전염병 정보를 숨긴 채 리씨 입만 막으려 했다"며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한 네티즌은 "우리를 죽이는 건 박쥐(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숙주)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침묵"이라고 했다. "국가의 수치, 시대의 수치" "우한시 정부는 공개 사과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전례 없는 네티즌 반응에 우한시, 후베이성이 잇달아 추모 입장을 밝혔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로 "리씨는 존경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했다.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도 리씨를 추모하는 소개 페이지를 만들고
'의사, 신종 폐렴 휘슬블로어'라고 소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중앙의 비준에 따라 국가감찰위원회 조사팀을 우한에 보내 리원량 사건을 전면 조사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사망으로 중국 정부는 더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그간 "유언비어는 바이러스보다 더 나쁘다"며 언론 통제를 강화해 왔다.
하지만 네티즌 가운데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날 새벽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언론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검색하기 편하게 하는 '#' 기호)를 단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180만명 이상이 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글은 오전 9시가 되기 전 삭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