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준 워싱턴 특파원](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1/27/2020012701374_0.jpg)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지난해 11월 최소 다섯 차례 미사일 공격을 키르쿠크 미군 기지에 퍼부었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경고용으로 사람이 없는 곳에만 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치명적 실수가 나왔다.
민병대원들은 평소처럼 사람이 없는 곳에 미사일을 쐈다.
그러나 그날 그곳엔 이라크계 미국인 통역사 노리스 하미드가 있었다.
미국 관리조차도 뉴욕타임스(NYT)에 "하미드는 운이 없었다"고 했다.
하미드의 불운은 전 세계를 흔들었다.
군사 행동을 꺼려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미국인이 죽자 복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지난 3일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했다.
중동이 일촉즉발 위기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행운이 세계를 불바다 위기에서 구한다.
먼저 솔레이마니 제거를 전후해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엔
시위대가 대사관으로 진입하면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최정예 미 해병대원들은 이 명령을 듣지 않았다.
뚫고 들어오는 시위대를 총탄이 아닌 최루가스로 밀어냈다.
현장의 판단이 피의 악순환을 막았다.
다음으로 이란은 솔레이마니 복수를 위해 지난 8일 탄도미사일 약 20발을 이라크 미군 기지로 쐈다.
이란의 사전 경고로 미군은 모두 방공호 등으로 피했다.
그러나 미사일의 위력은 방공호 일부를 무너뜨릴 만큼 강력했다.
한 미군은 "아무도 안 죽은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방공호 아래 미군이 한 명이라도 깔려 죽었다면 세계는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수퍼 강경파'인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베네수엘라 문제로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수행원 명단에도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회담 전날 갑자기 하노이에 나타났다.
하노이 회담 당시,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해결사' 역할을 했던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미·북 협상이 결렬된 이른바 '하노이 노딜'의 배경엔
볼턴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사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20년은 시작부터 세계가 우연한 사건으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이럴 때일수록 개인적 욕심을 줄이고 내실과 국민 통합에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선 정권의 의제인 남북 협력과 집값 잡기만 강조했을 뿐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리더가 할 일은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국민을 최대한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