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 대표적 인물이다. 김일성 최측근이었던 최현의 아들인 그는 청년동맹 제1비서로 잘나가던 1998년 갑자기 노동자로 강등됐다. 경제가 최악인데 가라오케에서 '부화방탕'하게 놀았다는 이유였다. 2004년에도 협동농장으로 좌천됐던 그는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으면서 다시 주목받았으나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된 뒤 돌연 계급이 강등됐고 다시 협동농장으로 쫓겨났다. 이후 평양으로 돌아온 뒤엔 김정은의 최측근 실세로 자리 잡았다.
▶북한은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사라지는 나라다. 장성택도 2013년 초부터 공식석상에서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7월엔 김정은과 대등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그리고 5개월 뒤 김정은 앞에서 끌려나가 고사포 수십 발을 맞고 처형됐다. 아버지의 최측근이자 고모부를 잔인하게 숙청한 김정은의 냉혈함에 세계가 경악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1/27/2020012701376_0.jpg)
▶장성택의 아내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가 남편이 처형된 지 6년여 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지난 설에 김정은·리설주 부부 옆에 앉아 설 공연을 관람한 사진이 공개됐다. 김경희는 그간 숙청설부터 독살설과 자살설까지 돌았다. 6년이나 은둔케 하던 고모를 다시 불러내 맨 앞자리에 앉힌 김정은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간부들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혁명화 교육'이라는 처벌 규정 때문이다. 북한 '행정처벌법'은 간부들이 위법행위를 했을 때 5일에서 반년까지 무보수 노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공사장에서 합숙하면서 막노동을 하는 처벌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표창을 받거나 국가 행사에 참여할 수 없어 공식석상에서 사라진다. 다만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경우'에 한해 처벌 도중 사면도 가능하다. 북한의 대표적 미국통인 한성렬 외무성 부상도 재작년 말 갑자기 사라지더니 함경도 광산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김영철이나 현송월도 한때 자취를 감췄고 그때마다 총살설이니 숙청설이 돌았다.
▶북한은 노동당 매체를 통해
발표하는 것 외에는 일절 취재가 불가능한 나라다. 통일부나 국가정보원도 이른바 '북한 소식통'이라는 출처를 통해 동향을 살핀다. 그러나 수많은 탈북민들의 증언 덕분에 그곳에서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공개 처형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다. 6년 만에 나타나 김정은 옆에 앉은 김경희가 어느 날 어떤 운명을 맞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북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