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1.09 03:15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해서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고, 쇠바늘이 세 번 부러졌으며, 검게 쓴 글씨가 세 번 뭉개졌다
(孔子晩善易, 韋編三絶, 鐵撾三折, 漆書三滅)."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책(冊)이란 글자의 생긴 모양에서도 알 수 있듯,
책(冊)이란 글자의 생긴 모양에서도 알 수 있듯,
죽간의 위쪽에 구멍을 내어 가죽끈으로 발을 엮듯 만든 것이 종이 발명 이전의 책 모양이었다.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너덜너덜해져서 세 번이나 끊어졌다. 이것이 삼절(三絶)이다. 또
대나무 구멍으로 가죽끈을 꿰려고 바늘을 쑤셔 넣다 보면 바늘 허리가 자꾸 부러진다. 이것은 삼절(三折)이다. 대나무 조각에 쓴 먹글씨는 손때가 묻어 세 번이나 지워졌다. 이것이 삼멸(三滅)이다.
요즘 식으로 말해 책을 하도 읽어 종이가 너덜너덜해지고 책장이 다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얼마나 '주역'에 푹 빠졌으면 '논어' 술이(述而) 편에서는
얼마나 '주역'에 푹 빠졌으면 '논어' 술이(述而) 편에서는
"하늘이 내게 몇 해만 더 허락해 '주역' 공부를 마치게 해준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수 있으련만
(假我數年, 卒以學易, 可以無大過矣)"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퇴계 선생이 서울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구했다. 여름 내내 문 닫고 그 책만 읽었다.
퇴계 선생이 서울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구했다. 여름 내내 문 닫고 그 책만 읽었다.
주변에서 더위에 몸이 상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냐며 걱정하자, 대답이 이랬다.
"이 책을 읽으면 가슴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일어나 더위를 절로 잊게 되네. 병이 날 리가 있는가?"
이를 베껴 쓴 사본(寫本) 한 질도 너덜너덜해서 글자의 획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요긴한 대목만 가려 뽑아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따로 펴내기까지 했다.
손때 묻혀 읽다가 너덜너덜해진 책이 서가에 한두 권쯤 꽂혀 있어야 한다.
손때 묻혀 읽다가 너덜너덜해진 책이 서가에 한두 권쯤 꽂혀 있어야 한다.
빨간색 표지의 '동양연표(東洋年表)'가 집에 한 권, 연구실 책상에 한 권, 탁자 위에 한 권 있다.
세 책 모두 18세기
언저리에만 손때가 새까맣게 묻었다. 오래된 한 권은 실이 풀어져 낱장이 자꾸 빠진다.
손때 묻은 부분을 볼 때마다 내가 18세기 전문 연구자라는 사실이 느껴져 기분이 좋다.
진(晉)나라 부현(傅玄)이 '잡시(雜詩)'에서 노래했다.
"지사는 날 짧음을 애석해하고, 근심 많은 사람은 밤 긴 줄 아네(志士惜日短, 愁人知夜長)."
이룬 것 없이 세월만 빨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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