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한국의 보수, '감동'을 탑재하라!

colorprom 2020. 1. 8. 17:00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한국의 보수, '감동'을 탑재하라!


조선일보
                         
  •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입력 2020.01.08 03:13

2020년은 결전의 해… 한국 보수의 최대 약점 '감동'을 되살리려면
진한 스토리를 만들고 담대한 비전 제시하며 스스로를 던져야 한다!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2020년은 결전의 해다. 단지 4월 총선이 예정돼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유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이 존립하고 지속해 새로운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꼬꾸라지고 망해서 끝내 먹히고 말 것이냐의 기로에 선 해다. 가뜩이나 올해 경자년(庚子年)은 경(庚) 자의 금(金) 기운이 강해 환란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다. 실제로 1910년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치(國恥)를 당했고, 1950년 경인년에 6·25전쟁이 터졌다. 그런가 하면 1960년 경자년에는 4·19 혁명이 일어나고, 1980년 경신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졌음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2020년 새해 벽두에는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발본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대책 없는 희망 사항만으로는 더 이상 끌어안을 힘도, 나아갈 동력도 없다.

# 현 단계 한국 보수의 결정적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감동이 없다는 데 있다. 진영 논리로 쫙 갈라져 있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무슨 감동 타령이냐고 되물을지 모르나, 바로 이렇게 진영 논리로 쫙 갈려 어떤 말에도 흔들림 없는 골수들이 아니라 이른바 관망하고 유동하는 중도층을 잡으려면 무엇보다 감동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사람이 아예 없지도 않고 돈이 없지도 않으며 사회적 세력이 없는 것도 아니나, 단지 '감동'이 없다! 그래서 상대가 저토록 죽을 쑤고 스스로 망할 일들을 저질러놔도 자빠뜨리기는커녕 되레 스스로 나자빠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가 감동이란 이 시대의 전략무기를 탑재하는 순간, 판세는 일순간에 뒤집어진다. 우리는 본래 정(情)에 약하다. 아니 '정(情)의 공동체'다.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파워는 다름 아닌 감동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김성규

# 한국의 보수가 감동이 없는 첫째 이유는 감동을 자아낼 만한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간 대한민국을 이끈 지도자들은 그 나름의 스토리가 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과 노무현마저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었다. 그 스토리가 바탕이 되어 리더십이 만들어지고 그 스토리 아래 사람들이 뒤엉키듯 모여들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보수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스토리가 없다. 경력과 스펙은 화려할지 모르나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휴먼 스토리가 없다. 단적으로 황교안 대표한테 어떤 스토리가 있는가. 스토리가 없으니 아무리 단식하고 장외에서 소리 질러대도 감동이 없는 것이다. 급기야 험지 출마를 선언했는데 따라붙는 이야기가 '종로도 험지다'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들은 그냥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한국의 보수가 감동이 없는 둘째 이유는 담대한 설정과 비전 제시가 없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1992년 초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이대로의 걸음으로 백 년을 가라"고 한 것을 모방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다못해 현 집권 여당은 100년 정당을 운운하는데 도대체 한국의 보수는 10년 집권 플랜조차 내보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지난 연말에 세목도 모르는 예산안이 통과되고, 헌정사에 큰 오점이 될 연동형 비례제가 날치기되어도, 또 정치보위부가 될 것이 뻔한 공수처법이 통과되어도 이렇다 할 맞대응 플랜도 내놓지 못한 채 정말이지 대책 없이 2020년을 맞은 것이다. 상대의 네거티브만을 들춰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자신의 포지티브가 살아 있어야 한다. 포지티브 전략의 제일은 담대한 미래 비전 제시다. 좁쌀 소인배들처럼 보수 내에서 신경전이나 벌이며 찧고 까불고 할 것이 아니라 크게 크게 설정하고 서로에게 들어오라고 품을 열어놓으며 그 바탕에서 새롭고 희망에 찬 담대한 미래 어젠다를 비전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원자력의 전면 복원을 통한 미래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을 도모하고, 보유세는 유지하되 거래세는 현격히 줄여 미래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 정상화시켜야 한다. 대미·일 관계를 신속히 회복하고 대중·러 관계를 원만히 지속하는 미래의 '대륙-해양 양면 외교'를 펼쳐갈 통 큰 의지도 피력해야 한다. 그렇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는 담대한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감동이 둥지를 튼다.

# 한국의 보수가 감동이 없는 셋째 이유, 더 결정적인 이유는 스스로를 던지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은 버는 것이 감동일 수 있다. 하지만 있는 사람은, 그것도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은 스스로 버리고 던질 때 비로소 감동이 된다. 그런데 이 난국에 자신을 던지는 이가 무더기로 나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이가 없지 않은가. 그나마 전광훈 목사 정도가 목숨 걸고 스스로를 던지는 모양새인데 특정 종교의 색깔이 너무 짙고 주변에서 입방정이 너무 많아 감동을 깎아 먹는다. 집값과 실업률은 폭등하고 수출과 벌이는 반의반 토막 나고 세금은 수탈 정도를 넘어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스스로의 것을 몽땅 던지겠다는 지도자가 단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그가 곧 이 시대의 진정한 감동 리더가 될 것이다. 지금은 웅변도 침묵도 감동이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를 초개처럼 던지는 살신성인의 자세만이 감동이다.

# 안동 도산서원의 정문 격인 '진도문(進道門)' 앞에 섰다. 말 그대로 '도(道)'로 나아가는 문이다. 퇴계 선생은 수제자 중 한 사람인 정자중에게 답하는 글에서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本立而道生)"고 했다. 물론 이 말은 '논어(論語)' 학이편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작금 우리는 무도(無道)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본을 다시 세우려면 자기를 던져야 한다. 그것만이 감동을 회복하고 미래를 열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7/20200107038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