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는 배제와 차별 불러… 유대인 학살도 편 나누기 결과
어느 편 아닌 상식의 편일 때 서로 공감할 영역 반드시 있다
밥 먹는 자리에서 처음 만난 상대의 정치 성향이 왜 궁금할까.
시인과는 결국 '조국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탈북 작가 김주성씨는 '어느 편이냐' 하는 질문이 즐겁지 않다. 차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3세로 도쿄에서 태어난 김주성씨는 1979년 아버지를 따라 북송선을 탔다.
일본에선 '조센진'이라고 놀림당했는데
'내 나라'라고 여긴 북에서도 '쪽발이' '째포(재일교포)'라며 차별당했다.
30년 만인 2009년 탈북한 그가 10년째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선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김 선생은 보수예요, 진보예요?"
삼겹살 먹는 식사 자리에서도 여지없이 진보냐 보수냐 물었다.
김주성씨는 "어느 편도 아닌 삼겹살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는 어느 쪽도 아닌 대한민국 편이고 이 나라 국민이다!' 하고 외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역사의 비극은 대부분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데서 시작했다.
조선 시대엔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따지며 죽이고 죽었다.
해방 직후엔 좌인(左人)과 우인(右人)이 극렬히 대립했다.
급기야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으로 300만명이 죽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같은 범죄 역시 편 나누기의 결과였다.
시인과 문학 이야기를 잠깐 하기도 했다.
그는 죽은 시인 박남철(1953~ 2014)을 형이라 불렀다고 한다.
필자는 학생 시절 박남철 시집을 찾아 읽던 팬이었다. 얼마나 반가운가.
우리는 죽은 시인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할 수 있었다.
나아가 김기림과 백석과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정치는 찰랑거리며 표면에서 파도를 일으키지만,
저 심연에서는 따뜻한 인간애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믿음을 서로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화는 끝내 그렇게 이어지지 못했다.
"너는 어느 편이냐?" 이 질문에 굳이 답해야
한다면 상식의 편이라고 말하려 한다.
나의 상식과 남의 상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상식 또한 가지려 한다.
서로 다르기에 토론할 수 있고 논의할 수 있다.
"어느 편이냐" 묻는 말에는 배제와 차별의 칼날이 숨어 있다.
상대를 베거나 찌르려 한다.
그러니 굳이 묻지 마시라.
어느 편이 아니라 상식의 편이라면 우리가 함께 도달할 공감의 자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