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완경(完經)과 '할머니 가설'

colorprom 2019. 12. 17. 15:52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52] 완경(完經)과 '할머니 가설'


조선일보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입력 2019.12.17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월경을 멈춘 상태를 흔히 폐경(閉經)이라 부른다.
나는 2003년에 출간한 '여성 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에서
부정적 어감을 지닌 폐경 대신 잘 마무리했다는 뜻으로 '완경(完經)'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인간 여성은 두 난소에 난모세포를 약 200만개 가지고 태어나
매달 그중에서 가장 완벽한 난자를 선별해 배출하며 임신 또는 월경을 거듭하다
50대 중·후반에 이르면 난모세포가 소진된다.
바야흐로 번식 임무를 완수한 셈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완경하는 동물은 극히 드물다.
뭍에서 사는 동물로는 우리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모두 물에서 사는 고래다.

범고래 사회에 완경 이후에도 한동안 사는 할머니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흰고래, 일각고래, 들쇠고래에게서도 확인되었다.

인간 사회에서는 비록 식량은 약간 축낼 망정
할머니가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훨씬 융성한다는 관찰 결과가 여럿 있다.

이른바 '할머니 가설'이 범고래에게서도 검증되었다.

범고래는 엄마를 중심으로 과년한 아들딸이 함께 모여 사는 전형적 모계사회를 이룬다.

야생에서 수컷의 최고 수명은 30년가량이지만

암컷은 대체로 30~40년을 전후해 완경한 후에도 수십 년을 더 산다.


최근 영국과 미국 고래학자들이 지난 36년간 모아온 데이터를 분석해

이 할머니 고래들이 손주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주식인 연어가 부족한 해에 이들의 기여가 더욱 두드러졌다.

오래전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가

"여성이 생식력을 잃고도 사는 것은 지구에 심각한 폐해"라는 망언을 했다가

일본 여성들에게 소송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무렵 이규태 선생은 바로 이 칼럼의 전신인 '이규태 코너'에서 오히려

"할머니는 지혜의 보고"라고 규정하셨다.

사고 차원이 다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6/20191216034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