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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도 오바마도 반한 '백작의 품격'

colorprom 2019. 12. 5. 15:29



빌 게이츠도 오바마도 반한 '백작의 품격'


조선일보
                         
             
입력 2019.12.05 03:00

[에이모 토울스]
美서 150만부, 한국서 4만부 팔린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의 작가
반동분자로 몰려 호텔에 종신연금… 로스토프 백작의 우아한 투쟁기
"투자전문가로 21년간 일하다가 40대 낸 첫 책 대박나 전업작가로"

빌 게이츠는 올여름 '휴가 때 읽을 책'으로 권했고,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올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추천했다. 2016년 미국에서 출간돼 150만부, 지난해 국내 소개돼 4만부 넘게 팔린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현대문학) 작가 에이모 토울스(55)를 이메일로 만났다.

"오바마와 게이츠가 왜 당신 책을 추천했을까" 묻자, 그는 "그건 그들에게 물어봐야지! 하지만 내가 만든 캐릭터에 서로 다른 인생 역정을 겪은 뛰어난 인물들이 공감했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답했다.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의 에이모 토울스.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의 에이모 토울스.
그는 "몇 년 전 파리에서 모델이 알려지지 않은 19세기 초상화 한 점을 사 책상 앞에 걸어놓았다. 소설 속 백작은 조금은 그림 속 남자로부터 영향받았다"고 했다. /뉴욕타임스
소설의 주인공은 러시아 귀족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구체제 유물로 여겨져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젊은 날 혁명의 도화선이 된 시를 쓴 공을 인정받아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 종신 연금당한다. 스위트룸에서 쫓겨나 창고방으로 밀려난 백작은 1922년부터 32년간 구금당해 웨이터로 일하면서도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어린 시절 콜레라로 부모를 잃었을 때 대부가 건넨 조언,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가 그의 신조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의 민낯조차 우아한 '품위의 인간'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 토울스는 "19세기 유럽 귀족 계급은 매너와 관례에 따라 살고 싶다는 열망뿐 아니라, 도덕과 용기에 따라 살고 싶다는 포부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면서 이를 대표하는 인물로 백작을 그려냈다.

소설을 쓴 건 아주 어릴 적부터다. "7세 때 읽기와 동시에 쓰기 시작했다." 예일대 졸업 후 스탠퍼드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고 소설 습작을 했지만 '입에 풀칠하려고' 뉴욕에 투자회사를 연 친구에게 합류해 투자 전문가로 21년간 일했다. 그는 "짜릿하게 멋진 직업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열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한 채 인생을 마치게 될 거란 걸 알았다"고 했다. 30대 중반부터 매 주말 글을 썼다. 40대 초반 1930년대 뉴욕을 무대로 한 '우아한 연인'을 쓰기 시작해 2011년 출간했다. 그 책의 판권이 1억원가량에 팔리자 2012년 말 전업 작가가 됐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토울스의 두 번째 소설이다.

'호텔에서만 생활하는 주인공'이란 아이디어는 2009년 제네바의 한 호텔에서 얻었다. "매년 출장 갔던 호텔 로비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년에 봤던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평생 한 번도 그 호텔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주말, 호텔방 메모지에 '모스크바의 신사' 플롯을 짰다."

한국어판으로 724쪽 책의 대부분을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채우는 일을 '도전'이라 여겼다. 토울스는 "건물 하나에 국한된 공간에서 독자가 눈을 뗄 수 없을 만치 강렬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제약이 엄청난 에너지가 됐다"고 했다. "나와 비교도 안 되는 거장이지만 멜빌 역시 '모비 딕'에서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주인공 이스마엘과 우리 독자들은 500쪽이 끝나도록 피콰드호(號)에서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시적 탐구를 통해 멜빌은 세계를 배에 싣는다."

월~금요일 아침 9시부터 책상에 앉아 작업하고, 정오 무렵 혼자 식당에 가 점심 먹으며 아침 작업을 수정하거나 다음 날 작업 개요를 짠다는 이 '회사원형 작가'는 2021년 출간 목표로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신작을 준비 중이다. "왜 쓰냐고? 글쓰기가 그 어떤 노력보다도 더 나를 만족시키니까.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글쓰기는 나를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면서, 그 안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05/20191205001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