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살짜리 애를 둔 부모들은 이맘때쯤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만큼 애가 탄다.
대학 합격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듯이 노심초사 휴대전화만 쳐다본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는 곳은 어린이집.
"빈자리 있나요?"라고 묻자
"죄송합니다. 내년 신학기는 힘들 것 같네요. 일단 대기를 걸어두시면 연락드릴게요" 란 답이 돌아온다.
기약 없는 약속이다.
인기 절정의 어린이집은 문의 전화 폭주를 견디다 못해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매년 재연되는 '11월의 풍경'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두 가지 조건 중 최소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돈이 많거나, 아니면 운을 타고나면 된다.
작년 12월 첫째가 생긴 나는 후자에 속한다.
갑작스러운 이사 때문에 지난 6월에서야 국공립어린이집 입소 대기를 신청했는데,
운 좋게 턱걸이로 합격했다.
맞벌이 점수(1순위 200점) 덕분에 외벌이 가정(3순위 0점) 수십 명을 제칠 수 있었다.
운이 없는 가정은 11월 내내 어린이집 입소 확정 전화를 기다리다가 지친다.
엄마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어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 글을 끄적이며 울분을 토한다.
한 엄마는
"갈 어린이집도 없고, 올 수 있는 아이 돌보미도 없는데
왜 국가는 자꾸 애를 낳으라고 하는 건가요?" 라고 했다.
커뮤니티엔 하루에도 이런 글이 수십 개 올라온다.
출산 때문에 일을 관둔 엄마는 잠시 구직 활동을 하는 방법을 써 어린이집 입소 점수를 높이기도 한다.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 경쟁률은 보통 수십 대 일.
결국 다른 지역 어린이집을 알아보거나, '할머니 찬스'를 쓰는 수밖에 없다.
이 옵션들도 운이 따라야 한다.
황혼 육아를 부탁할 수 없다면, 결국 맞벌이 중 한 명이 일을 관두는 수순을 자연스럽게 밟는다.
어린이집 후엔 유치원이 남았다.
마찬가지로 수십 대 일의 입학 경쟁을 뚫어야 한다.
엄마들 사이에서 "육아를 잘하려면 광클(입소 신청 때 빠른 마우스 클릭)에 능숙해야 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 '2018년 전국보육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0~5세 영·유아가 있는 2533가구를 대상으로 정부에 바라는 가장 중요한 육아지원정책을 물어본 결과,
전체 응답자의 35.9%가 '국공립어린이집 확충'(1위)을 꼽았다.
전체 어린이집에서 국공립어린이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9%(3만9181곳 중 3531곳)다.
한국에선 오직 소수만 통과하는 입소 경쟁을 해마다 반복한다.
부모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충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내 아이가 어린이집의 보살핌을 받을 때, 다른 집 아이들은 기약 없는 합격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운에 기대야만 하는 이런 현실에선 나는 둘째 낳기를 거부한다.
역대 최저라는 '합계출산율 0.88명' 수치에 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인다.